▲ 임창준 객원논설위원

‘가렴주구’(苛斂誅求)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가혹하게 많은 세금을 거두거나 백성의 재물을 억지로 빼앗는다는 뜻이다. 가렴주구는 공자의 이야기에서 유래가 됐다. 구당서(舊唐書)에 따르면 어느날 공자가 제자들과 태산을 지날 때, 여인이 세 개의 무덤 앞에서 목놓아 울고 있었다. 왜 우는지 연유를 묻자 여인은 “옛적 시아버지가 호랑이한테 잡아 먹혔고 나의 남편도 호랑이에게 당했는데, 이제는 나의 아들이 또 호랑이한테 당해 죽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공자가 “그런데 왜 이곳을 떠나지 않습니까?”라고 하자, “이곳은 세금을 혹독하게 징수하거나 부역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다. ‘가혹한 세금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 그렇게 해서 생긴 사자성어가 바로 ‘가렴주구’다.

가렴주구란 말까지 이르지는 않더라도 요즘 제주도내 서민들은 당국에서 징수하는 세금부담 때문에 걱정이 쌓여가고 있다. 토지 주택 소유자들이 겁 없이 올리는 부동산 값 때문이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1월1일 기준으로 해 6월초 발표한 개별공시지가에 따르면 제주지역 부동산값은 지난해에 비해 17.51%p 상승했다. 이는 전국 17개 시·도 중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더욱이 제주는 2014년 4.73%, 2015년 12.46%, 2016년 27.77%, 2017년 19.0%, 2018년 17.51% 등 최근 5년간 무려 81.47%p 올랐다.

그야말로 제주지역 땅값이 날개를 달고 고공행진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공시지가는 토지시장의 지가정보를 제공하고 일반적인 토지거래의 지표가 되며, 국가·지방자치단체 등의 기관이 그 업무와 관련해 지가를 산정하거나 감정평가업자가 개별적으로 토지를 감정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전국 3199만 필지의 개별공시지가 산정과 재산세·양도소득세 등 각종 세금 부과 기준이 됨은 물론 건강보험료 산정, 기초노령연금 수급대상자 결정, 공직자 재산등록 등 30여 종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따라서 부동산 값이 오른다는 것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 세금부담이 커진다.

땅값만 오른 것이 아니다. 단독주택. 아파트의 개별 공시가격도 최근 몇 년간 크게 올랐다. 토지 등 부동산은 그래도 있는 사람들이 보유하고 있다 손치더라도, 당장 살고있는 주택의 공시지가가 급등한 것은 서민층에 큰 세금부담으로 다가온다. 주택 공시가도 땅값 상승 못지않게 날개를 단 것이 제주의 현실이다.

공시지가 상승에 따른 부작용은 도민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는 기초연금을 신청한 빈곤충 노인 6833명 중 절반에 가까운 46%인 3073명이 기초연금 편입심사에서 탈락했다. 이유는 부동산값 상승으로 ‘소득 인정액’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다. 공시지가가 드리우는 어두운 한 장면이다. 부동산값 상승이 투기와는 거리가 먼 서민들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진 것이라곤 단독주택 한 채 뿐인 60대 초반의 A씨(제주시 삼도동)는 58세에 정년퇴직했다. 퇴직후 그의 수입으로는 국민연금 40여만원과 방 한 칸을 빌려줘 연 250만원을 임대료로 받는다. 한 달 평균 소득이 60만원 선이다. 부인은 저녁에 식당 알바도 다닌다. 이런 그에게 날개를 단 세금 고지서가 날아들었다. 3년전 재산세가 40만원으로 오르더니 최근엔 70만원선으로 올랐다.

35년 된 노후 주택에도 세금이 가중되고 있다. 주택건물은 헐어 해마다 가치가 떨어지는데도 재산세는 올라가기만 한다. 소득은 이전보다 떨어지거나 그대로인데 세금만 눈떵이처럼 늘었다. 올해 기초연금 수혜자격도 박탈당했다. 집 한 채를 보유하고 있는 사실만으로 그렇게 됐다. 이 모두 재산세를 메기는 공시지가가 오른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시급히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가렴주구’란 말이 현실적으로 실감날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