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희성 농부시인

외환위기 때였다. 화이트칼라들이 평생직장이라고 여겼던 온실에서 거리로 내몰렸다. 아프리카 사바나보다 더 엄혹한 생존의 세계에서, 사무직으로 경력을 늘려왔던 이들이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자기가 몸 담았던 조직의 힘이 결코 자기 역량과 등식이 아니었음도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손에 쥔 얼마간의 퇴직금과 위로금이 쑥쑥 줄어드는 것이 심각한 현실로 다가올 무렵, 배짱 있는 사람들은 창업을 준비했다. 부서장, 임원 등으로 활약하다 나왔는데 뭘 못하겠냐는 자신감이 그나마 살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무렵, 프랜차이즈 산업이 고개를 들었다. 창업자금만 있으면 경험이 부족해도 소규모 창업이 가능하다는 말에 많은 이들이 솔깃해 했다. 
케이 사장은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며 이때 이미 네 가지 브랜드를 론칭하고 있었다. 그에게 창업상담을 받으러 오는 이들 중에는 기업의 임원, 고위공직자 등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일수록, 첫 대면에서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대단한 창업 노하우를 배울 수 있겠거니 하고 잔뜩 기대를 품고 온 이들에게 케이 사장이 먼저 시킨 일은 ‘거울 보고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큰 소리로 인사하기’였다. 체면 때문에 거부하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케이 사장은 1차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에겐 절대 프랜차이즈 사업권을 내주지 않았다. 고객 응대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에게 창업을 권유하고 사업권을 내주는 것은 ‘사기’라는 것이 소신이고 철학이었다.

얼마 후 한 사람이 다시 케이 사장을 찾아 왔다. 그는 집에 가서 거울을 보며 몇 번씩이나 인사 연습을 해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울음이 터져 나왔다고 고백했다. 자기 연민, 처지 한탄 때문이 아니고, 자기가 얼마나 위선적, 위악적으로 살아왔는가를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직업에 귀천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어느 직업이든 그 직업이 요구하는 근면과 성실, 간절함의 무게가 산처럼 크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케이 사장은 어떤 업종이든 성공법칙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했다.

친절, 정직, 한결같음 등 세 가지를 들었다. 다르게 표현하면 고객만족, 투명경영, 소신경영이다. 그 다음 자리에 창의적 발상이니 충성고객 창출이니 하는 브랜드 차별화와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부모를 찾은 큰딸에게 들려 보낼 선물로 오메기떡을 사면서 오래 전 친분을 맺었던 케이 사장이 떠올랐고, 다시 여러가지 장면 위에 일주일 전 선거와 정당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표선 사거리 약국 옆에 새로 가게를 연 오메기떡집의 이름이 ‘오메기점빵’이다. 떡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집이었다. 음식 파는 집이 ‘잘하다’는 칭찬을 들으려면 친절, 맛, 정직 이 세 가지가 정상적이어야 한다. 단골이든 뜨내기든 손님에게는 사근사근 친절해야 하고,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서비스하고 있다는 설명에 정직해야 하고, 아무리 진시황이 다시 깨어날 불로초를 넣었다 해도 맛은 기본이어야 한다.
어디 이런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나뿐이겠는가?

점빵이든, 대기업이든, 정당이든 사람을 감동시키고 동의를 얻어내는 기준과 이치는 크게 다르지 않다. 줄여 말하면 정정당당하면 된다. 내가 만난 오메기점빵 젊은 여주인은 친절하고 당당했다. 자기네 부부가 새벽부터 만들어 내놓는 오메기떡에 대한 자부심이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태도에 배어났다.

폭망한 정당들의 민낯을 보면서 이런 참견을 하고 싶다.

내가 내놓는 재료가 유통기한 지난 못 먹을 재료는 아닌지(구태정치, 정책 없는 흑색선전), 내가 내놓는 오메기떡이 제주전통 떡이라는 고유성, 특성은 유지하되, 시대변화에 맞는 다양한 입맛을 고려하고 있는지(구태 적폐세력 배제, 소신과 철학을 보유한 인물 영입), 상품가격과 접객서비스는 적절한지(공약의 실천, 시민중심 행정 서비스)를 살펴보라는 것이다.

‘오메기점빵’은 거리의 작은 기업이지만 서귀포시민들에게 만족과 자랑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에 반해 몇몇 정치집단은 여전히 국민들의 공분과 질타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지방분권 시대의 정당정치와 지방자치가 성공하는 길, 어려울 것도 없다. 오메기떡 한 알로 고객을 만족시키는 떡집에서도 한 보따리 가득 교훈을 얻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