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덕 편집국장

옛 말에 몹시 슬프거나 초조할 때 애끊는다, 애닳는다, 애태운다, 애터진다, 애간장 녹는다고 했다. 여기서의 애는 창자를 말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시조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가 있다. 여기에서도 ‘애를 끊나니"란 시구가 나온다. 즉 창자가 끊어지도록 깊은 아픔을 노래한 것이다.

왜 비통하고 노심초사하면 창자가 닳고 끊어진다고 했을까.  80년대 중반 미국의 의학 학술지에 실린 한 연구를 보면 “마음 쓰면 쓸수록 창자의 직경이 작아지고 창자의 길이가 늘어난다”는 상세한 보고가 있다. 즉 심신(心身)이 창자로 민감하게 접합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 조상들의 애 끊는다는 말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해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네 옛 문헌인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稗官雜記)에도 꾀꼬리의 단장(斷腸)얘기가 나온다.

조선조 중종 17년(1522)에 저자인 어숙권이 서해(西海) 옥곡(玉谷)에서 있었던 일이다. 집주인 홍준이 꾀꼬리 어미와 새끼를 얻어서 기르고 있었다. 홍준은 꾀꼬리 어미는 망으로 엮은 조롱속에 넣어 기르고 새끼는 다른 곳에 넣어 길러 서로 보지 못하게 했다.

하루는 집주인 홍준이 새끼를 가져다 어미 조롱 속에 넣어주고 어미가 어떻게 하나 보려 했다. 어미는 새끼를 보자마자 홀연히 한 소리를 지르고 죽어버렸다. 그러자 그 주인집 아이들이 장난삼아 죽은 어미 꾀꼬리의  배를 갈라보았다.

어미 꾀꼬리의 배는 창자가 끊어져서 무려 열여덟 토막으로 잘라져 있었다. 새끼를 가까운데 두고도 보지 못한 어미새의 한(恨)이었다.

어숙권은 이 장면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는 “내가 불쌍하게 여기고 마음으로는 항상 이상하게 여겼다”고 적고 있다.

근심이 있을 때 밥 맛이 없어지는 것은 애가 닳거나 타기 시작한 때문이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것도 질투의 정념으로 창자가 수축 신장한 때문이라고 한다.

신장이 과민한 사람이 십이지장에 탈이 생기는 것도 모두 이 심신의 교착이 창자에서 예민하게 작용한다는 증거다.

그래서일까. 몹시 슬프면 애가 닳다가 가늘어져 드디어 토막토막 끊어지는 단장(斷腸)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 러시아 월드컵이 한창이다. 지난 18일 한국과 스웨덴과의 첫 경기가 비록 1대 0으로 졌지만 경기가 벌어지는 매 순간 순간마다 이를 지켜본 우리 한국인들의 애는 바짝바짝 타 들어갔을 것이다. 필자도 애를 졸이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결말은 애끓는 안타까움이었다.

또 있다. 6.25 전쟁 후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헤어짐과 이별의 한을 쓸어 내리는 현장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애가 타 들어갔을까. 이 이산애수의 아픔을 KBS가 기획한 ‘이산가족 찾기’는 얼마나 많은 이들을 울렸고 또 울렸는가. 눈물 보따리가 풀어진 날이었다. 우리 민족의 이산가족의 큰 아픔은 지금도 남과 북에 그대로 있다.

최근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우리나라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적 정상회담은 곧 이산가족 상봉을 예견하고 있다.

더 이상 우리 민족끼리 이산가족이라는 단장의 아픔은 사라져야 할 시대적 산물이다. 빨리 해결되길 학수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