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순복 동화작가

어릴 적부터 유난히 꽃이라면 사족을 쓰지 못할 정도로 세상의 꽃이란 꽃은 예쁘지 않은 꽃이 없다. 그래서인지 시간만 나면 꽃을 보러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는 버릇이 있다. 한창 혈기가 왕성하던 청년일 때는 화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꽃을 사면 화가 가라앉은 관습으로 일이 꼬이거나 울분을 터트리고 싶을 때마다 꽃집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그 버릇은 늙어 가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아서 길을 걷다가 호박꽃을 만나도 걸음을 멈추고 한마디 속삭이곤 한다.

올해에는 유난히 많은 꽃 축제가 있었다. 튤립 축제로 시작돼 장미꽃, 백일홍, 양귀비, 수국 축제 등 별별 꽃들이 다 축제의 소재가 돼버린 제주. 그러나 축제장이라고 찾아간 곳에서 여러 번 실망을 안고 돌아왔다.  장미 축제장에는 심은 지 겨우 이제 3년 정도 된 꽃나무들이라 꽃 축제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빈약했으며 거기다가 새빨간 장미가 너무 예쁘다는 생각에 가까이 가보니 가짜 꽃을 매달아 놓은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쪽으로 아이디어는 창출됐을까? 진솔하고 정직하게 하는 편이 오히려 관람객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건 아닐까? 실망에 또 실망. 수국 축제장에는 그나마 여러가지의 수국꽃이 피어 있긴 했지만 만원에 가까운 입장료를 내고 구경하기에는 입장료가 좀 아깝다는 생각에 동물 학대라는 느낌이 강한 돼지 쇼라는 걸 보게 되고 말았으니.

돌아오는 길에 바람을 맞으며 시흥리 길가에 심어 놓은 수국길을 따라서 걸으며 이쪽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했다. 제주의 거친 바다와 거친 바람은 필자를 제주다움으로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다. 길가에 키 작은 제비꽃과 빈카도 예쁘고 들판에 하얗게 덩어리로 피어있는 메밀꽃도 얼마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지, 심지어 가시 돋친 엉컹귀도 어찌 이리도 아름다운지. 어쩌다 여행을 다녀 보면 제주만큼 길가에 꽃을 많이 심어 놓은 곳도 드물다.

어쨌든 꽃은 아름답고 인간의 마음을 정화하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다른 많은 사람들도 꽃을 보며 기쁘고 즐겁지 아니할까. 그런데 이 소리 없이 흔들리는 작은 꽃으로 제주를 사랑하게 만든 회사가 있었으니….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약 12㎞ 떨어진 모 소주 회사에서 삼천 평이라는 넓은 땅을 코스모스 꽃밭을 만든 것이다. 이 계절에, 아직 가을이 오려면 한참인데, 이 여름에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하늘하늘 칼라칼라로 흔들리고 있었다. 회사는 제주를 찾는 관광객과 제주에 거주하는 도민을 위해 꽃밭을 가꾸어 무료로 개방해 준 것이다. 필자가 찾았을 때 많은 관광객들이, 혹은 젊은 청춘들이 꽃밭에서 저마다 추억을 담느라 셀카봉을 들고 온갖 자세를 취하며 행복해했다.  드넓게 펼쳐진 코스모스 꽃밭을 보며 놀랐는지 아! 아! 하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덕분에 회사는 광고료 없이 아주 확실하게 소주를 광고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철 이른 꽃을 배경으로 너무나 흡족해 하는 시간이었으니 이 회사야말로 가녀린 꽃으로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다시 제주를 찾아오도록 은근히 충동질하고 있으니 이쯤이면 꽃으로 제주를 사랑하고 제주에 발길이 머물게 하는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준 것에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그렇지 아니한가?

돌아오면서 다시 한 번 그 너른 꽃밭을 만들어 기꺼이 내어 준 회사에 고개를 숙였다. 답례로 광고판도 사진 한 장 찍어 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