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문
기획특집아! 광해여, 광해여
광해 묘 주변은 그의 모친과 형 임해군의 묘 자리잡아광해 유배길을 걷다 6 성묘
장영주  |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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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04  17: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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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모 공빈 김 씨 성묘 규모상 왕릉 위엄 갖춰…기록은 없어
문인석·무인석 두루 갖춘 김 씨 묘 생전 영화·권위 보여줘
광해 “내가 죽으면 어머니 먼발치에 묻어라”…천마산 탐내

 

   
▲ 성묘: 사적 제365호 경기도 남양주 진건면 송릉리 산55번지에 있는 광해의 어머니 김 씨 묘이다. 동화콘텐츠문화원장이 사진을 제공해 주었다.

(제주신문)관리인(안내원) 뒤를 따라 갔다. 묘 주변에 CCTV가 설치되어 성묘를 보호하고 있다.
광해군 묘 아래쪽 산줄기에는 생모 공빈 김 씨의 묘인 성묘(成墓)가 자리 잡고 있다. 성묘는 봉인사 주지 스님이 찾아가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 가는 길: 풍양 조 씨 시조 묘(성묘 보다 먼저 만들어 진 묘) 안내표지판 따라 300미터 들어가면 성묘가 나온다. 허가를 받아야 하기에 관리인의 안내를 받아야 찾아 갈 수 있다. 주변에 개를 기르는 집이 있어 어려움이 있다.
   
▲ CCTV: 이방인이 성묘에 들어가면 굉장한 사이렌 소리를 낸다. 관리사무소에서는 일일이 방문객의 동향을 영상으로 받아 보고 있을 것이다.

남양주 성묘 안내문
공빈 김 씨는 김희철의 딸로 재색이 출중해 선조의 총애를 받아 후궁이 돼 임해군과 광해군을 낳았다. 광해군이 세 살 되던 해 병으로 사망했다.
광해가 왕위에 오른 뒤 능은 성릉(成陵)이라 했으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가 폐위되자 다시 성묘(成墓)로 바뀌었다. 묘역은 작은 능선에 안치돼 있어 세밀하고 아름답게 조성됐는데 서향한 봉분에는 8개의 사대석(능을 조성할 때 병풍석 대신으로 쓰는 돌)을 둘렀고, 그 주위에 12개의 기둥으로 된 난간석(왕릉의 능상 위 봉분 둘레를 장식하는 난간 모양의 석물)으로 돌렸다. 이 외로 곡장·혼유석·장명등·망주석·석양·석호·석마를 거느린 문인석(문관을 상징하며 머리에 복건을 쓰고 손에는 홀을 들고 있다)과 무인석(무인을 표현한 조각답게 갑옷을 입고 있으며 칼을 쥐고 있다)이 각각 1쌍씩 세워져 있다. 묘의 규모로는 왕릉과 비슷하나 묘비 등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 문인석과 무인석.

덧붙인다면, 난간석은 중간에 문양을 조각해 화려함을 더했다. 봉분 주위 양쪽으로 호석과 양석을 각각 2개씩 놓았으며 봉분 앞에는 거대한 상석(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 놓기 위해 넓적한 돌)을 배치했고 좌우의 망주석은 팔각의 받침대에 이중으로 층을 만들었다. 상석 앞에는 장대석을 놓아 층을 만들어 왕릉의 위엄을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다.

   
▲ 12지석: 십이신장·십이신왕라고도 한다. 이들은 열두 방위(方位)에 맞추어서 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돼지·개·쥐·소 등의 얼굴 모습을 한다. 부조(모양·형상을 도드라지게 돌로 새긴 조각)하는 기법을 사용했다.

문인석과 무인석은 왕이 살아있을 때처럼 왕을 보호하고 왕에게 경배하는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는 생전의 영화를 보여주고 왕의 권위를 살려주는 장식적인 의미가 강하다. 이들은 벅수(장승)와는 달리 공들여 조각한 흔적이 역력해 무덤 앞에서 주인의 지위를 대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야화 한 도막
천마산(남양주시 중앙에 위치한 810m 높이 산으로 임꺽정이 본거지라 알려졌으며 이성계가 이곳에 사냥 왔다가 내 손이 석자만 더 길었으면 하늘을 만질 수 있었을 텐데라며 칭송했다 한다)은 좌우가 겹겹이 포근하게 싸여진 부처님의 어깨 형이요, 앞으로 나갈수록 봉우리가 차츰 낮아지면서 좌우가 잘 둘러져 힘찬 용이 맑고 넘치는 정기를 받은 형국이라 한다. 그래서 광해군이 “내가 죽으면 어머니(성능) 먼발치(천마산 기슭)에 묻어라”고 소원을 했듯 탐낼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 풍양 조 씨 시조 묘: 고려조 개국공신 조맹(趙孟)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조맹은 후삼국시대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참여하여 개국공신으로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이르렀다. 풍양 조 씨들은 시조 조맹의 출생지인 풍양(남양주시)을 본향으로 두었다. 풍양은 조맹이 태어나 노년까지 살다 죽은 곳으로 전해지고 있고, 묘소 또한 풍양 적동(남양주시 진건면 송릉2리)에 남아 있다 .

풍양 조 씨 시조묘
당연히 공빈 김 씨 묘와 같은 번지(송능리 산 55번지)에 있다.
선조 10년(1577) 공빈 김 씨가 죽자 그의 묘를 풍양 조 씨 시조 묘 뒤 30보쯤 떨어진 곳에 장사지냈다. 당시의 국법으로는 왕실에서 능묘를 쓰게 되면 그 구역 내에 있는 사가의 묘는 이장해야만 됐다. 따라서 공빈 김 씨 묘소가 들어옴에 따라 풍양 조 씨 시조 묘는 옮겨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으나 선조는 그대로 두기를 명해 보존되다가 광해가 임금으로 즉위하게 됐을 때에 문중에서는 궁여지책으로 봉분을 파헤쳐 평지로 만들고 나무를 심어 무덤의 존재를 숨겼다가 광해가 폐위되자 원상 복구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 임해군 묘.

임해군 묘
기왕 온 김에 임해군 묘도 찾아보았다. 성묘를 지나 힘들게 걸었다(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 56에 있다). 성묘(공빈 김 씨, 임해군 모친) 묘가 산 55번지니 바로 근방이란걸 알 수 있다. 임해군 묘는 사적이 아니다. CCTV도 없다. 단출하게 문인석, 혼유석, 망주석 만이 있을 뿐이다. 임해군은 광해군의 형이다. <제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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