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덕 편집국장

우리네 옛날 도둑들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덕이 있었다. 이는 도둑이지만 반드시 지켜야할 행동강령이었다.

그 옛날 도둑과 사기꾼은 도도(盜道)와 기도(欺道)를 지키려고 애썼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동료에게 소외받고 파문당하기도 했다.

중국 고대의 대도(大盜)인 도척이 정했다는 도도(盜道)는 아래와 같다.

▲남의 집에 뭣이 어디에 있는 지를 아는 것이 지(智)요 ▲앞서 들어가는 것이 용(勇)이며 ▲뒤에 나오는 것이 의(義)이고 ▲고르게 나눠주는 것이 인(仁)이며 ▲훔친 집 뒤주 속에 한 끼 지을 양식을 남겨두는 것이 예(禮)라고 했다.

기도(欺道)의 다섯가지는 ▲우선 남을 속이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의(義)요 ▲속이다가 들통나면 깨끗이 무릎끓는 것이 용(勇)이며 ▲속이고 취한 것이 적으면 부지런히 더 벌라고 훈계하는 것이 지(智)이며 ▲과부나 외로운 사람은 속이지 않는 것이 인(仁)이며 ▲우환을 겪고 있는 사람은 속이지 않는 것이 예(禮)라고 했다.

요즘은 일반인에게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얘기하는 것도 버거운 일이다. 하물며 사기꾼 도둑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는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하지만 사기꾼 사회의 도덕의 상실만으로 끝나지 않고 일반 사람까지 살맛을 잃게 만드는 요즘 세상사(世上事)는 보통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기꾼 사회가 그립다는 것은 아니다. 사기꾼 사회라도 잃지 않았던 최소한의 ‘인간성(人間性)’이 존재했던 사회, 그런 사회를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유머러스한 사회가 보고 싶은 것이다.

삼강오륜대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부간에 유별하고 친구간에  유신(有信)을 중요시하는 세상은 한마디로 재미없다. 이런 세상은 요즘 잣대로라면 숨이 턱턱 막히는 세상일 수밖에 없다.

조금 바보스럽기는 하지만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관대함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세상은 살맛난다.

명분의 노예가 되어 하루종일 피로하게 살지 말고 명분에서 적당히 바보스런 탈출로 긴장을 풀고 여유를 갖는 세상살이가 필요한 때다.

‘누더기 틈의 볕살’이라는 말이 있다. 코린트의 철인(哲人) 디오게네스가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로부터 지금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볕 좀 쬐게 좀 비켜달라”고 부탁했다는 말은 유명하다. 디오게네스 입장에서는 세상 살아가는데  당장 필요한 것이 태양의 빛이었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누더기 옷을 입고 사는 디오게네스에게는 ‘누더기 틈의 볕살’이 그 뭣보다 소중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각계각층에서 보면 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이산가족 상봉은 기나긴 이별을 숨죽이며 살아온 우리 동포, 우리 민족에게는 크나큰 슬픔인 이산애수((離散哀愁)의 한을 푸는 날이 될 것이다.

이 이산애수는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는 가장 폭 넓은 공통분모이기도 한다. 떠나는 아리랑에 저항하는 이산애수를 읊은 시나 노래가 유독 많은 게 우리 민족이다.

앞으로 있을 남북이산가족 상봉은 다시 한번 이 땅을 넘치는 눈물바다로 만들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