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는 항상 견제와 긴장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혹시라도 양 기관이 궤도를 이탈해 밀월관계를 갖는다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집행기관은 주민의 복리증진과 지역발전을 위한 사업 추진에 열정을 다해 목표를 달성해야 할 책임이 있고, 지방의회는 집행기관이 규정을 위반하지 않고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원희룡 지사와 김태석 도의회 의장이 지난 13일 합의해 발표한 ‘제주도와 도의회의 상설정책협의회를 위한 공동선언문’을 보면 도와 도의회가 ‘발맞춰 나가기’를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물론 지방분권 개헌과 도민의 자기 결정권 강화 등 공동의 목표에 노력하고 도의회의 인사와 조직권을 도의회에 이양하는 일 등은 매우 바람직하며 환영할 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현안을 원만히 추진하려면 협치가 필요하다. 양 기관이 사사건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면 협치는 실현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협치를 제도화하는 것은 곤란하다. ‘협치의 제도화’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모든 현안을 ‘좋은 게 좋은 것’이란 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길을 터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제주도와 도의회의 상설정책협의체는 사실상 연정의 형태와 유사하다. 이미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와 경기도의회가 예산분야의 연정을 편 바 있다. 심지어 경기도에 연정부지사와 연정협력국까지 설치했었다. 지금은 평화부지사, 평화협력국으로 각각 명칭과 기능이 변경됐다. 자유한국당 소속의 남 지사가 도의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였지만 지방정부가 취할 제도는 아니다.

이번 도·도의회의 상설정책협의회는 김태석 의장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집행기관의 독주를 감시해야 할 도의회 의장이 오히려 협치의 제도화를 주도했다니 아이러니다. 자칫 협치 제도화가 우려대로 야합해 도의회의 잇속 챙기기와 집행기관의 무사안일 행정을 용인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경우 도민적 비난을 면치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