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순복 동화작가

엊그제, 고3 학생의 엄마로부터 교내에서 왕따 문제가 발생했는데 자기 아들이 말리다가 약간 연루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경우 도와줄 방법도 위로할 방법도 없는 나의 무능하고 부족함이 속상하고 웬만한 합의가 되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돌아서 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그런데 만 하루가 지나지 않은 어제 늦은 오후, 쓰레기를 버리려고 갔는데 주변 나무 울타리 옆에 남학생 둘이서 있는 것을 보게 됐다. 무심코 지나치기에는 심상치 않아 자꾸만 눈길이 가는 것은 키가 조금 큰 학생은 위협적인 고자세였고 키가 작은 학생은 아주 양손을 배꼽 아래에 모으고 부동자세로 주눅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아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흔히 보던 폭력이라는 단어를 떨칠 수가 없을 정도로 극과 극으로 대비 되는 광경이었다.

‘저건 분명히 폭력이다’

이런 섣부른 생각과 함께 심장이 두근거리며 숨이 탁 막혀 오는데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하고 조바심만 날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학생들을 보지 않은 척 해 보지만 내 행동이 그리 위장술에 능하지 않다는 건 익히 증명된 바라 학생들이 눈치를 챘는지 큰 학생이 걸음을 옮겨 이십 미터쯤 걸어갔다. 하지만 작은 학생은 요지부동 움직일 줄을 몰랐다.

지금은 군에 있는 내 아이도 저랬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자 어떻게든 이 일을 막아야 한다는 의협심이 발동했지만 연약한 늙은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재활용센터에 근무하는 아저씨를 불렀다. 아무래도 학생폭력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아저씨도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먼발치서 슬금슬금 관찰하더니 한다는 말씀이 때리지는 않나 보네요 라는 것이다.

백주 대낮, 그것도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러 오는 주변이라 설마 폭행이야 하지 않겠지 하는 마음이지만 작은 학생이 지금 감내하고 있을 그 위압감과 공포감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분명 큰 학생이 작은 학생을 윽박지르는 모습이었다.

관여하지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맞고 때린다면 경찰에 신고라도 하겠지만 하는 마음으로 차를 몰고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저 학생은 저 위기에서 구해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하는 생각에 일단 학생들이 보이지 않은 곳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용감하게 아는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이모인데 지금 여기서 꼭 학생 폭력 같은데, 한 학생은 주눅이 들어서 부동자세고 한 학생은 위압적인데 어떻게 할까? 신고했다가 만약 폭력이 아니면?”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경찰 출동시켜서 아니면 지도 훈계만 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통화를 끝내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큰 학생이 혼자 저만치 가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작은 학생의 손을 잡아끌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학생의 말인즉, 어제 싸운 일로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아줌마가 쳐다보는걸 알았다 걱정해 줘서 고맙다 등,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색이 됐던 얼굴에 화색이 돌며 편안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에휴, 하도 왕따니 교내 폭력이니 하는 말을 많이 들어서인지 학생들을 보면 모두가 내 자식 같고 학생들이 안고 있을 고민, 즉 부모에게 터놓고 말하지 못하는 아픔까지 고스란히 전해져 옴을 어쩌랴?
다행이다 하며 학생의 등을 쓸어 주고 어른들은 너희들은 위해 늘 걱정하고 조바심을 낸단다 하는 말로 이별했다.

쓸데없는 참견이었을까? 재활용센터 아저씨에게 순찰차가 오면 폭력이 아니었다고 잘 말씀드려 달라 부탁하고 돌아오는 내내 속이 아려 왔다. 과연 나는 이런 상황을 외면해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