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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 모의 원찰 봉인사…보은사가 변행돼 알려진 사찰광해 유배길을 걷다 10 봉인사
장영주  |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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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08  15: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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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가 그의 아들인 왕세자의 수복무강 위해 사리탑 등 조성
봉인사 창건연대는 미상…조선초기에 있었던 절로 추정할 뿐
봉인사 기신제는 왕의 모습을 기리는 제례…지금까지 전해져

   
▲ 나한상: 1250개로 꾸며져 있다. 보통 5백(부처가 입멸한 후 그의 가르침을 정리하기 위한 회의를 소집하였을 때 5백 명의 제자가 모였기 때문에 5백 나한이라 한다) 나한을 말하는데 여기엔 더 많이 있다.

봉인사에 들렀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봉인사 주지 스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마을버스, 태실, 사리탑, 기신제, 논문, 세미나, 광해군 묘, 사릉, 성묘, 임해군 묘, 풍양 조 씨 묘, 국립중앙발물관, 일본박물관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슬슬 풀어 주었다. 백과사전처럼….

봉인사(보은사, 광해군일기 광해 11년 3월 11일자 기사에 나온다)는 광해 모의 원찰(죽은 사람의 화상이나 위패를 모셔 놓고 명복을 비는 법당을 이르던 말)로 자연스레 보은사라 불렀을 것이다. 그 뒤 사리탑을 세워 법인(사리의 이칭)을 봉안한 뒤(1620년) 절 이름은 법인을 봉안한 절이라 해 봉인사(奉印寺)가 된 것이라 주지 스님이 말했다. 여기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이 보은사라는 말은 조상의 은혜에 보답하는 능침사찰을 이르는 일반명사로 사용하기에 봉인사는 보은사가 변형돼 알려진 사찰인 것으로 추정된다.

봉인사 창건연대는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조선 초기에 있었던 절이 아닌가 추정할 뿐이다. ‘봉인사 사리탑 중수기비’에 조선조 광해 11년(1619)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중국을 통해 이 땅에 들어왔고 그 법인(法印)을 이듬해(1620) 천마산 봉인사로 보내어 동쪽으로 200보 위치에 탑을 세워 봉안하고 이를 수호 예불했다고 했으니, 그 이유는 왕실의 발원으로 그리했다 한다. 광해가 그의 아들인 왕세자의 수복무강을 위해 태실을 조성하고 부도암을 짓고 사리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 큰 법당 내부: 기신제 법식을 치르는 곳이다.

광해군 기신제는 큰 법당에서 예를 갖춰 법식을 행하고 따로 마련된 강당에서 불자나 일반 관련자들이 한데 모아 제례를 지낸다.

   
▲ 기신제 지내는 곳: 주변이 정결하다. 자동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룻바닥이 넓다. 방석도 있고 긴 의자들을 한 구석에 모아뒀다.

봉인사 기신제
광해군 묘 가기 전에 이 곳 광해 자취를 느껴 보라며 사무장의 안내에 따라 기신제(음력 7월 1일에 광해군 기신제가 열린다 한다)가 열리는 곳에 갔다.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허락해 줬다.

   
▲ 내부: 광해 기신제가 열릴 때 많은 불자·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각종 회의도 열린다.

기신제는 왕의 모습을 기리는 예례로 2009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조선 왕릉을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할 때 큰 점수를 부여한 것은 건축과 조경뿐 아니라 지금까지 600여 년을 이어온 제례 문화였기 때문이다. 조선 왕실에서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제례를 올렸는데 대표적인 제례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이 기신제다.

나한상에 따른 일화 한 도막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 꿈을 무학 대사에게 말하니 무학은 ‘장차 큰 귀인이 될 꿈’이라면서 나한전을 세우고 5백 나한을 봉안해 500일 동안 기도를 드리라고 했다. 마침 그때 함경도 길주의 광적사가 불에 타 폐사가 돼 그 절에서 모셔온 5백 나한이 다른 곳에 안치돼 있었다. 이성계는 석왕사를 세워서 5백 나한들을 봉안하기로 하고 하루에 한 상을 옮기며 5백일 동안 기도했다. 마침내 그는 5백 나한의 영험 때문인지 조선을 개국해 태조가 된다.

광해주숭모회 기신제
봉인사 탐방을 마치고 사무실에서 전주이씨대동종약원 광해주숭모회 자료를 정리했다. 이 자료는 남양주문화원향토문화연구소장(경기도문화관광해설사)이 사릉 해설의 집에서 여러 문답의 결과로 얻은 중요한 자료다.
 
해설사가 준 ‘제향’이란 책자에 보면, 전주이씨대동종약원 광해주 숭모회에서는 조선 제15대왕 광해군·문성군 부인 기신제를 2017년 8월 22일(음력 7월 1일) 광해군 묘에서 지냈다 한다. 이 자리에서 광해군주종묘회장(이재천)은 봉행사에서 ‘…최근 들어 광해임금의 치적에 대한 학계의 재평가가 꾸준히 이뤄지면서, 국민의 관심과 인식도 변화돼 탁월한 군주로 인식돼가고 있는 점은 격시지감이나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몇 년 전부터 대동종약원과 남양주시의 지원으로 예를 갖추어 기신제를 봉행하게 돼 더욱 뜻있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광해임금의 약사와 비문은 약하고 광해군묘제향축식 전문과 광해주 기신섭향의 홀기 전문, 광해주기신제향 화보를 카피해 게재한다.

   
▲ 광해군묘제향축식 전문

 

   
▲ 광해주 기신섭향의 홀기 전문

 

   
▲ 광해주기신제향 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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