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렬 시인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또 벌어지고 있다. 제주도정이 어떤 일을 추진했을 때 그 일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뻔히 알면서도 아닌 척, 모른 척, 미친 척 시치미 떼기 식 행정정책을 펼쳐드는 것 같다. (나 혼자만의 속단인가.) 물론 나름대로는 이런저런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쳤다고 변명하겠지만, 그것마저 도민을 호도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무엇인가 진실성이 없는 공공사업이나 업무추진이 그것을 입증하잖은가.

더이상 자연을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은 이미 오래전부터 식상할 정도로 거론돼온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는 이번에도 비자림로 확장 공사에 나섰다. 4차선 도로 확장을 위해 무려 2160그루의 도로변 나무를 채벌하고 일부의 오름도 절취할 계획이라 한다. 어떻게 도민들이 잊을 만하면 그 틈새를 교묘히 이용해 자연훼손에 앞장서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제주도가, 제주도정이 엿장수 가위질하듯 마음 내키는 대로 운영해도 되는 곳이란 말인가. 제주도민들은 제주도정이 하자는 대로 순응하는 만만한 존재에 불과한가. 설령 일부의 지역이기주의가 도로확장을 원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제주도민 전체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왜 모르는가. 아니, 알면서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는 것이겠지. 그것은 예전에 어디선가 많이 듣고 보던 습성 그대로 의뭉스럽기 짝이 없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언젠가 뉴질랜드에 갔을 때 일이다. 버스를 타고 국도를 달리고 있었는데 마을로 들어가는 길들이 모두 좁은 비포장도로였다. 아, 이렇게 가난한 나라였나, 생각하며 가이드에게 물었던 내가 어리석었다. 그곳 사람들은 포장도로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국가에서 도로포장을 권유해도 거절한단다. 가급적이면 자연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면서 지내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다는 것. 물론 국민성이나 처한 상황이 다른 점도 없잖아 있겠지만 그런 태도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 아직까지도 개발만이 황금달걀을 낳는 닭인 양 착각하고 있다. 개발이 가져오는 폐해는 이제 지구 곳곳에서 온갖 자연재해로 돌아오고 있잖은가.

가령, 4차선 도로 확장도 어차피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차들이 많은 포장도로보다 오히려, 차들을 최소화함으로써 공해 없는 섬이라든지, 별이 빛나는 섬을 만든다든지 하는 게 미래적으로는 더 질 높은 관광산업이 되잖을까. 산업화와 정보화, 또는 인공지능화 사회로 떠밀려 갈수록 인간의 감성은 점점 메말라갈 것이고, 그리하여 인간은 인간적 감성과 더불어 순수자연이 더 필요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내가 뉴질랜드에 갔을 때의 그 밤하늘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밤하늘에 그렇게 많은 별이 뜨는지 몰랐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튕기면 쩡, 하고 쇳소리가 날 것처럼 명징한 별들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별들은 손에 잡힐 듯 바로 머리 위에 떠 있었다. 그만큼 공기가 맑다는 뜻일 것이다.

미래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문명과 문화시설을 갖추고 있으면서 자연이 살아있는 관광지를 선호할 것이다. 이제 관광 풍속도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는 관광에서 정신적인 여유나 휴양을 목적으로 하는 관광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니 자연을 죽이면서 아무리 많은 길을 뽑고 넓힌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도로의 신설과 확장 등은 그 주변의 땅값 상승을 부채질해 땅값 인상과 더불어 도의 세수입을 늘이는 등 관련자들에게는 쾌재를 부를 만한 일이겠으나, 궁극적으로는 제주의 자연을 하나하나 죽이는 살상행위라는 것을 왜 모르는가. 모르는 게 아니다. 알면서 눈앞의 이익에만 탐닉하거나 무언가를 극비리에 추진해나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의심, 지울 수 없다.

제주도는 지금 온통 병들어가고 있다. 도대체 누가 제주 섬을 이토록 병들게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