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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 유배의 길 마무리…영화로의 제작은 ‘행운’광해 유배길을 걷다 12 에필로그
장영주  |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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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22  11: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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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의 돋보이는 외교정책, 글로벌 외교 거울로 삼아야
추사 유배길에 어등포∼관덕정 잇는 광해의 길 어떨까

   
▲ 영화 스틸컷:2012년 9월 13일 개봉 10월 20일 역대 한국영화 중 7번째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공식 누적관객 수는 1,231만 9,542명으로 한국영화 역대 관객 수 3위에 올랐다. 감독 추창민, 주연 이병헌·류승룡·한효주, 130분 방영, 광해군 8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지 않은 15일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비가 그쳤다. 바람도 안 분다. 안개도 걷혔다. 아침과 점심때와는 딴 세상이다. 광해군 묘를 돌아보며 덧붙여 사릉과 봉인사와 성묘와 임해군 묘와 풍양 조 씨 시조 묘를 돌아보며 배고픔도 잊은 채 꼬박 12시간을 지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오후 5시가 넘어 아침겸 점심겸 저녁을 막걸리 한잔 곁들여 먹고 사무실로 향했다. 얼른 아이패드로 정리해야 하니까…. 좀 있음 잊어버리니까….

영화 왕이된 남자 광해
왕의 일기에 단 한줄, ‘숨겨야 할 일들은 기록에 남기지 말라 이르라’라고 쓰여 있는데, 이 말이 엄청난 추측과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한다. 왕위와 권력 다툼, 당파들 간의 싸움으로 혼란스러운 시기가 오늘날과 대비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영화에서 가짜 임금이 진짜 임금 노릇을 하며 진심으로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왕위 보전보다 민생, 백성의 소리를 들으려 애쓰는 참됨, 인정 많고 사랑스런 임금 노릇을 하는 시대상을 엿볼 수 있었기에 더 없는 행운 중 행운이었다.

광해는 대동법을 실시해 공납을 토지 결수에 따라 1결당 12두 쌀이나 동전, 무명 등으로 선혜청에 납부하도록 해 농민들의 부담을 줄이고 공인이 등장해 화폐 경제의 발달 계기가 됐다. 중립외교정책으로 명과 금(청)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실리를 추구해 전쟁을 막으려 했고 허준 동의보감 편찬, 조선왕조실록 복원, 기유약조(임진왜란 이후 일본과 교역 재개), 통신사 파견, 양안사업 등을 펼쳤다.

그와 반대로 광해는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하고 서인으로 강등시키고 유폐시키는 불효를 저질렀으며 형 임해군과 동생 영창대군을 죽이는 반인륜을 어기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당시 서인들이 광해를 내쫓고 기록한 역사서를 믿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서 실제로 광해를 내쫓고 왕이된 인조의 정권은 병자호란을 일으키고 왕이 무릎을 꿇는 굴욕까지 당했는데 광해가 내쫓기지 않고 계속 집권했다면 중립외교로 병자호란도 겪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고, 대동법 시행이나 동의보감 편찬을 비롯해서 임진왜란도 안 당했을 걸 하는 아쉬움이 돋보이는 외교 감각은 오늘 날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이제 다시금 광해를 우리시대에 나타내는 이유는 지금의 시대상의 이유도 있겠지만 그의 선택에 대해 올바르고 현명했다 판단할 수 있게 하고, 광해의 해외 정책을 글로벌 외교의 거울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특히 제주도 유배라는 엄청난 시련은 희망이라는 것과 접목할 절호의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는 데에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이다.

   
▲ 명나라와 후금(청나라):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중립외교를 펼쳤다.

마무리
대장정의 길을 마무리하며 여러 자료를 분석하고 발로 뛰고 흩어졌던 퍼즐을 맞추는 과정에서 관련 글들이 약간의 오류를 발견해 이에 대한 공약수를 도출하려 노력했다. 자료는 비문, 관리사무소 공지 내용, 숭모회 제향, 하멜표류기, 포구, 제주목사명, 제주시 옛지명, 제주시 옛터, 왕릉 역사기행, 제주인물대사전, 제주향토문화사전, 이야기 한국 야사, 우리의 역사 이것이 진실이다, 북제주군지, 제주도 오름과 마을 이름, 남사록, 탐라별곡, 조선전, 조선 서해 탐사기, 조선왕들의 속마음 등이며 기타 인터넷과 영화 다큐 TV에서 다뤄진 내용을 활용했으며 이에 나타난 약간의 오류(?)를 광해군·광해·광해주라는 명칭은 일단 광해라 표기하면서 군·주라 표시해야 할 대목에서는 그에 따랐다. 유·류로 나타나는 부인 성도 일단은 유로 표시 했으나 류로 표시해야 할 곳에서는 그에 따랐다. 사능이냐 사릉이냐도 확실히 구별 못했고, 풍양 조 씨와의 관계, 어등포로 들어온 이유, 유배온 날짜, 사망 날짜, 사망한 나이, 유배기간, 유배지에 동행 관원, 적소터 환경, 적소터 위치, 시신 보관 방법, 시신이 제주도 삼읍 돌아다닌 경로, 시신 반출 포구, 제주목사 이름, 하멜 이야기 등에 나타나는 차이점을 정리하는데 어떤 기준을 제시할 건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마지막으로 제주신문에 쓴 광해 칼럼(2018. 05. 20.)을 중요 부분만 발췌하며 마무리 하고자 한다.

광해 유배길 추사 유배길 따라
광해, 조선 제15대 임금으로 선조와 인조 재임기간 사이에 조선을 다스렸다. 1641년 8월 7일(음력 7월 1일) 조선 전라도 제주목(현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유배(귀양) 중 사망해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에 안장됐으며 모친 공빈 김 씨와 배우자 폐비 유 씨, 폐 세자, 폐 세자빈, 형 임해군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이제 광해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서서히 일어나며 광해 유배 길에 대한 탐방행사도 진행되고 있다. 제주역사문화연구소에서는 제주시 옛도심 속에 담겨진 역사문화의 자취를 찾아 유배지 탐방행사 시 광해 적소터를 포함한 문화유적 탐방길을 열고 있고 제주북초등학교 졸업생들이 제주성안 역사길 지도에도 1999년부터 한라일보에서 진행하는 유적지 표석세우기 일환으로 발견한 광해 적소터를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기에 추사 김정희 제주 유배 생활의 자취와 흔적을 느끼는 추사의 길이 제주대 스토리텔링 연구 개발 센터(센터장 양진건 교수)에서 완성한 대정-오설록-안덕계곡을 잇는 추사의 길에 어등포-제주시 옛도심 적소터-관덕정(목관아지)을 잇는 광해의 길을 연결시킨다면 어떨까? 그럼 서귀포시에서 출발해 제주시에서 마감하는 유배길이 완성 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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