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계의 거물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뇌종양으로 투병중 지난 8월말 타계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착잡하다. 2008년 대선 때 민주당 후보 오바마와 함께 겨뤘던 매케인은 선거직후 “오늘 선거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특별한 순간이다. 미국이 근면과 의지를 지닌 모든 미국인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해왔다는 점을 나는 믿는다”라며 오바마의 당선을 축하했다. 매케인은 정적(政敵)이었던 오바마가 대통령 재임때 만든 의료서비스인 ‘오바카 케어’를 트럼프가 반대하는 법안을 만들자 이 폐지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맞서 날을 세우기도 했다,

매케인은 1968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비행기가 폭격을 당해 양쪽 팔과 등에 치명적 골절상을 입고 베트남 포로수용소에 갇혔다. 그의 아버지가 태평양함대사령관 이어서 베트남(월맹) 쪽에서는 외교적·전략적 호혜조치로 그를 빨리 풀어주려 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석방을 거부했다. 포로 석방은 수감된 순서대로 이뤄져야 한다며 자신보다 앞서 잡힌 포로들이 죄다 풀려날 때까지 나가지 않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5년반 동안 포로로 수감됐다가 풀려났다. 매케인 집안은 3대가 군대에 참전해 장성생활을 한 가문이다. 그는 자신을 폭행. 고문하고 수감했던 베트남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모두 전쟁 중에 있었다. 전쟁 중에 적군의 포로로 잡힌 내게 그들이 커피라도 대접하길 바라겠는가”며 베트남인들을 이해했다.

오히려 그는 자당(自黨)인 공화당의 입장에 반해, 베트남에 대한 경제제재 조기 해제와 미-베트남 관계 정상화를 위해 앞장섰다. 전후 불발탄 제거, 실종자 수색, 다이옥신 오염 지역 해독 같은 인도적 문제 해결에도 앞장섰다.

한국전 때 유엔사령관을 지낸 밴프리트 대장도 전장에서 아들을 잃었다. 중국 건국의 아버지 모택동(毛澤東) 역시 한국전에서 장남을 잃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26대 대통령은 1차대전 때 중령으로 연대를 지휘했고 아들 2명을 전선에서 잃었다. 장남은 2차 대전 노르망디 상륙전에서 준장으로 참전했다가 죽었다. 차남은 하버드 재학중 자원해서 군에 들어가 전투조종사가 된 엘리트였다.

넬슨 만델라, 그는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에서 흙탕물 같은 과거를 질펀하게 쏟아냈다. 어느날 만델라가 수감중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로벤섬 교도관들이 만델라에게 땅을 파라고 했다. 그가 명령에 따라 무덤모양으로 땅을 파자, 이번에는 안으로 들어가 누우라고 했다. 만델라는 순간 이제 죽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교도관들은 바지의 지퍼를 열고 그의 몸에 소변을 눴다. 모욕치곤 너무 심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악에 받쳐 이를 갈며 복수를 꿈꿨을지 모른다. 그런데 27년간 옥살이하다가 석방된 만델라에게는 분노도, 원한도 없었다. 대통령이 되자 심지어 이전에 자기를 감시했던 백인 교도관을 취임식에 초대했다. 놀라운 용서와 화해의 반전이었다. 태생적으로 너그러운 사람이었을까? 아니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로벤섬에 들어갔을 때, 그는 분노로 가득한 전투적인 사람이었다. 백인들은 흑인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의 분노는 당연했다. 그런데 오랜 감옥생활을 통해 그는 용서와 아량을 배웠다. 그는 용서없이는 나라에 미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 중앙언론은 전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아들을 병역에서 빼내고, 한반도 유사시 자녀를 미국 등 국외로 빼내기 위해 시민권·영주권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따내려는, -처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이권이나 따내려는- 우리나라 정치인, 정치판, 고위층과는 너무 다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감)가 새삼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