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식 교수

사람들은 당연히 예술과 사물을 분리해 생각한다. 예술은 우리 주변에 있는 일상의 사물들과는 다르며 지고한 정신성을 포함하는 그 무언가의 재현(再現)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정도는 쉽게 떠올리며 이들 르네상스 거장들의 천부적인 재현능력에 놀라움과 경탄을 보내곤 한다. 더불어 유럽여행의 핵심인 뮤제 드 루브르(Muse du Louvre)의 <모나리자>를 군중들 틈새에서나마 성공적으로 볼 수 있었던 경험까지 더해진다면 예술의 가치는 역시 실물 같은 ‘놀라운 재현 능력’에 있다는 믿음에 모두들 확실한 방점을 찍게 된다.

예술은 과연 그럴까. 1917년 어느 날, 세 명의 젊은이들이 뉴욕의 브로드웨이를 지나 매디슨 스퀘어를 가로질러 목적지인 5번가 118번지에 도착했다. 모트 아이언 웍스(Mott Iron Works) 라는 간판이 보이는 이곳은 다양한 변기들이 진열된 배관 전문 업체다. 셋 중 이지적이고 콧대가 날카로운 뉴욕 생활 2년차인 프랑스 청년 마르셀 뒤샹이 흰색 도기 재질의 소변기를 사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인 <샘>의 탄생을 예고하는 서막이었다. 자신의 작업실에서 뒤샹은 구입한 소변기에 <R. Mutt 1917> 이라는 가명(배관업체 Mott Iron Works를 의도한 것)과 날짜를 적었고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는 기성품인 변기가 뒤샹의 선택에 의해서 본래의 기능은 사라지고 새로운 의미를 생산해낼 수 있는 ‘의미소’가 된 것이다. 뒤샹은 Mutt라는 이름으로 야심차게 1917년 개최된 뉴욕 앙데팡당전에 <샘>을 출품했으나 전시를 금지 당한다. 관람자들의 당혹감과 격렬한 반응으로 인하여 위원회 논의를 통한 거부가 있었고 작품은 철거되었으며 이후 <샘>은 누군가에 의해 파괴됐다는 루머와 더불어 그날 이후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뒤샹의 <샘>으로부터 20여년 후인 1942년, 파블로 피카소는 산책 중에 버려진 고물자전거를 발견한다. 유레카를 외치며 버려진 자전거를 끌고 작업실로 돌아온 피카소는 스페인의 마요르카 해안가에 밀려온 부유물들을 뒤적이던 습관처럼 뚝딱뚝딱 자전거를 분해한 후 핸들과 안장 두 가지 요소만을 결합하여 <황소머리> 라는 기발하고 멋들어진 작품을 생산해 냈다. 뒤샹의 영향에 의한 뒤샹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듯 사물과 사물을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의 기호를 생산해 낸 것이다. 뒤샹은 ‘샘’을 통해 예술품 창작에 관한 기존의 전통적 개념에 도전했다. 기존 질서에 대한 반란이다. 예술가의 손끝에서 시작하여 예술가의 손끝에서 완성되어야한다는 예술창작 관련 불문율처럼 굳어진 기존의 전통적 제작과정은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뒤샹으로 인하여 ‘재현에서 제시로’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성됐다. 즉 제작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예술가의 선택과 이를 제시하는 개념만으로도 작업이 완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자취를 감춘 뒤샹의 <샘>은 그 후 어떻게 됐을까. 미술사에 미치는 <샘>의 중요성 때문에 1917년 당시 스티글리츠가 찍은 <샘>의 사진을 근거로 뒤샹의 서명이 새겨진 열다섯 점의 복제품이 제작되었다. 이 에디션들은 전 세계에 컬렉션 되었으며 여덟 번째 에디션은 1999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700만 달러, 우리 돈 약 190억 원에 달하는 금액에 낙찰되기도 한다. 또 다른 에디션은 현재 파리 퐁피두 센터 미술관에서 상시 전시되어 사람들로부터 곤혹스러움 또는 경의어린 시선을 받고 있다. 5년 전 필자도 뒤샹의 <샘> 주위를 뱅뱅 돌며 뚫어져라 쳐다본 강렬한 기억이 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뒤샹의 <샘>, 어느 한 점이 더 우위에 있다고 가치평가 할 수 있을까. 평가할 수 없다. 평가자체가 모순이다. <모나리자>와 <샘>은 출발부터 지향점 자체가 서로 다른 예술인 것이다. 이제 미술은 재현을 떠났다. 미술은 재현이 아닌 제시만으로도 가능한 세상이 됐다. 마르셀 뒤샹의 <샘>을 시작으로 이미 100년 전 일이다.

황소머리/파블로 피카소/1942/파리 피카소 미술관

샘/마르셀 뒤샹/1917(1964)/파리 퐁피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