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만 해도 제주는 농경사회였었다. 일 년의 보람과 결산은 집마다에 쌓아놓은 눌로 마무리되었다. 노적가리를 제주에서는 ‘눌’이라 하였다. 제주의 눌을 멀리서 보면 작은 오름을 닮았다.  육지에서 노적가리는 탈곡 못한 볏짚을 쌓는 경우였었다. 반면 제주에서 마련하는 눌은 종류가 많고 다양하였다. 해초 눌, 고구마 눌, 촐 눌, 짚 눌, 고구마줄기 눌 나뭇가지 눌, 고시락(탈곡후 남은 이삭 껍질 : 굴묵용)눌 등이 그랬다. 이는 제주의 환경과 밀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모작을 해야 하는 농경지는 지세가 약해 해초를 거름으로 써야 봄 농사가 되었고 방목했던 마소는 집에 들여 건초를 사료로 써야 했으며 굴묵을 난방으로 사용하여야 해서 그랬다. 

 어촌에서는 아침마다 밀려온 해초를 한두 짐씩 지어다 말려 해초 눌을 만들었다. 며칠을 말린 해초들을 추가하여 일 년 내 쌓았었다. 해초 눌에는 감퇴 눌, 둠북 눌, 톨 눌 등이 해안도로에 줄을 잇고 쌓았었다. 어느 집, 누군가의 해초의 눌은 노력과 보람의 눌이다. 많이 쌓은 해초 눌은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하였었다. 우영이나 뒤뜰에 생고구마를 구덩이에 넣어 저장하는 고구마 눌은 양식을 저장하는 눌이다. 들판에 말린 고구마 절간 눌은 보다 높은 소득을 위한 효율의 눌이었다. 앞마당엔 마소의 먹이인 촐 눌, 고구마줄기 눌 연료용인 짚 눌 나무 눌이 마련되었었다. 이런 눌들은 재활용 눌이고 자연 순환적인 눌이다. 눌을 만들 때 바탕이 되는 눌굽을 다지고 결과물의 양을 미리 계산하여 원형이나 타원형으로 쌓을 것인지 결정하고 쌓았었다. 눌굽을 만드는 일은 계획적인 구상이 필요한 일이었다. 쌓은 눌은 노람지(이엉)를 두르고 주젱이(주지)를 올리고 밧줄로 엮어 완성하였었다. 

 완성된 눌의 크기나 수량은 그 해의 수확에 대한 평가의 척도가 되고 겨울나기의 방편이기도 하였다. 쌓아놓은 눌은 실생활에 일 년 이내에 소비되고 다음해가 오기 전 다시 새로운 눌이 완성되었었다. 눌에 쌓은 짚단이나 촐(띠)단은 옆에서 한단씩 빼내어 사용하는데 거의 속 내용인 모든 단이 사용될 때까지 이엉이나 노람지는 형체가 유지되어야 제대로 쌓은 눌이 되었다. 지금이야 대체된 소재로 필요성이 퇴색되어 집마다 눌을 쌓는 일이 없어졌지만 지난해를 보내고 올해를 맞으며 일 년의 눌을 생각해보자

 새 해가 시작되는 달이다. 공무원들이나 직장인들은 작년의 업적을 스스로 평가해보고 금년의 업무계획을 정립할 때이다. 농부가 눌을 쌓듯이 노력과 실행결과를 빈틈없이 쌓아나가야 할 것이다. 갈등이나 결과에 민원이 없도록 마무리하는 눌의 교훈도 중요하다. 사업을 추진하는 부서는 해초의 눌 처럼 업적을 많이 쌓고 공공서비스 부서는 배려와 봉사 그리고 사랑의 눌을 많이 쌓았으면 좋겠다.

눌을 누는 사람들은 거둬들이는 사람이고 곡식의 알맹이와 더불어 그 부산물인 짚이나 줄기도 아끼고 저장하여 사용 시기를 조절하며 자연 순환적으로 버리지 않고

활용하는 것이었었다. 이런 지혜도 본받을 필요가 있다. 

사회구성원으로 우리들도 새 해엔 보다 많은 사랑 그리고 배려를 베푸는 상상의 눌을 구상해보자. 이번 해에는 농부가 쌓아올렸던 눌 같이 보람과 업적을 쌓아 오름 같은 좋은 눌로 다음 해를 맞이하는 멋진 황금돼지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