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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018년은 제주4･3이 70주년을 맞는 해였습니다. 이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국비와 지방비 합쳐 백수십 억 원이 투입되고 그만큼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습니다. 저마다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평화와 인권의 가치가 넘실대는 그런 ‘세계평화의 섬 제주’를 행사 내용에 담았습니다.
제주사람들에게 ‘평화의 섬’이란 다소 낯선 어휘가 다가온 것은 1991년 소련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제주를 찾은 직후의 일이었습니다. 그의 제주 방문은 그 어느 지역보다 레드콤플렉스가 강했던 제주사람들에게 충격과 당혹감을 함께 안겨 주었습니다. 그 이후 제주도민들은 1998년부터 북한 동포들에게 감귤보내기 운동을 벌였고, 남북 민족평화축전을 통한 활발한 민간교류활동도 추진하였습니다.
또 2000년 제주4·3특별법이 제정되어 정부 차원에서 진상조사가 추진되자 유족들과 제주도민들은 보복이나 새로운 갈등이 아닌,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이 비극의 역사를 평화와 인권의 역사로 승화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2004 1월 27일 정부로부터 제주도가 ‘세계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되었습니다.
평화의 섬 선언문에는 ‘삼무정신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제주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며, 평화정착을 위한 정상외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한다.’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정부는 ‘제주도에서 평화 증진 및 확산을 위한 평화 실천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지도록 지원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제주도민들은 4·3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기에 더욱 평화를 갈망하였고, 드디어 ‘평화의 섬’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평화의 섬’의 취지가 무색해져 갔습니다. 그 ‘평화의 섬’을 구현하기 위한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제주평화포럼’은 그 명칭에서 ‘평화’를 떼어버린 지 오래 되었습니다. 강정마을에 이미 해군기지가 들어섰고 성산읍에 지어질 것으로 추진되고 있는 제2공항은 공군기지라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은 고조되어왔고 제주해군기지에 미군의 핵 잠수함이 입항하게 됐습니다. 제주의 군사기지화 문제는 평화로운 제주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과거는 되풀이 된다.’는 말처럼, 평화를 손에 얻은 그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고 이제 다시 음습한 전쟁과 폭력의 기운이 유령처럼 제주도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70년 전의 4.3을 기념하고 역사적 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바로 그 70년 전의 악몽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이 물밑에서 서서히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다시, ‘평화의 섬’을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주도가 무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군대나 군사기지도 없는 적극적인 의미의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초기에 여러 학자들이 주창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권의 부침에 따라 수시로 말을 바꾸거나 침묵으로 일관해버려 이제 ‘비무장’의 개념이 희석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다시, ‘비무장 평화의 섬’을 이야기해야 될 시점입니다. 그것은 정부가 지정해줄 리도 만무하고, 학자들이 다시 주창할 리도 없을 겁니다. 이제 제주도의 미래를 위해 깨어있는 양심적 도민들이 나설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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