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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모시는 사회
김성률  |  교사 / 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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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14  17: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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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시절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는 별로 웃기지도 않은 띄어쓰기 놀이로 웃곤 하였었다. 어린 시절 ‘진짜로 그런 큰 가방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러면 참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고딩 시절 책가방은 ‘묘한 으스댐’이였다. 교복이나 교련복에 가방끈이 너덜거리고 사전과 참고서와 교과서와 공책과 도시락과 체육복과 기타 준비물에 부풀대로 부픈 가방은 들고 다니는 것이라기보다는 옆에 끼고 다니는 것이었고, 거기에 보조 가방 하나쯤은 걸치고 다녀야 ‘공부 좀 하는 학생’으로 보였었다. 여학생 눈에 들려면 그 정도의 수고로움과 웃는 낯짝으로 피곤함을 숨기고 길가를 활보해야 했었다. 조금은 낡아서 헤진 가방이어야 했었다. 한편 소위 ‘노는 애들’은 그 가방 두께가 얇아야 했다. 얇은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손은 바지주머니에 들어가 몸이 조금은 흔들거려야 ‘좀 논다’는 표시였다. 두꺼운 가방을 끼고는 물리적으로 손을 주머니에 넣을 수가 없었다. 노는 것과 공부하는 것의 차이가 손이 위치를 결정했다고나 할까? 그런 치기도 다 지난 촌스러움이고 미친 학교 서열의 부스러기였지만 말이다.

그 때는 그래도 가방이 제 역할에 충실했던 때였다. 불과 몇 해 전에만 해도 가방은 그 역할이 단순했었고 노동의 무게는 가방의 가치보다는 드높았었다. 그러던 가방이 어느 날 강남처녀들과 그 엄마들의 꼬드김에 힘을 얻어 반란을 일으켰다. ‘무엇을 넣고 다닐까’를 벗어던지고 ‘어떤 이름으로 보일까’의 신사고로 무장하고 거리를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가방은 ‘명품빽(백)’이 되었다. 계급상승인가, 권력창출인가, 그런 게 아니라면 적반하장인가. 그 무엇이든 가방은 사람을 딛고 노동의 가치를 넘어 거리의 주인이 되었다. ‘주인가방 노예인간’의 새 세상을 건설한 듯 거리를 누빈다.

무릇 사람은 삶을 채우는 가방이다. 어떤 삶을 채우는가에 따라 그 사람이 달라진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욕구는 더 나은 역할을 통해 더 나은 모습의 사람이 되고자 함일 것이다. ‘나는 내 안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 이것은 사람으로서 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이고, 제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공동체 내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의 핵심 포인트라 하겠다. 그리고 그 사람 안에 무엇이 채워져 있는가에 따라 그가 굳이 내보이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를 보게 된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하였던가. 요즘 속이 별로 채워진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가방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려 드는 듯하다. 죽어라 일해 100만원도 벌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세상에서 몇 백, 몇 천 하는 빽 걸치고 어깨 흔들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권한다. 좋다 그렇게 하라. 그리고 그렇게 멋지게 보이려면 배고픈 아이들에게, 잠 잘 곳 없는 이웃들에게, 비록 알지는 못하지만 저 멀리 아프리카의 어느 헐벗은 부족에게, 그만큼만 마음을 나눠보길 권한다. 그럼 그 빽은 몇 백, 몇 천의 가치를 훨씬 넘어서리라. 아니다. 그 명품 백의 반이나, 반의 반이나, 반의 반에서 그 반이나, 그것보다 훨씬 적다해도 좋다.

빛나는 그대의 명품빽에 빛나는 그대의 삶 한 조각을 넣어보라. 그리고 걸치고 다닌다면 그대는 가방보다 먼저 빛나고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나의 명품빽은 어디에 쳐박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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