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필자는 서유럽 5개 국가를 방문한 적이 있다. 해외여행이 지금처럼 개방이 덜된 때라서 필자의 해외여행은 각별했다. 로마를 방문했을 때 좀 충격적인 ‘사건’을 목도했다. 공항에서 로마 시내로 버스를 타고 가는데 신호등이 달린 거리마다 차량이 앞으로 나가질 않았다. 교통신호를 대기하는 사이에 집시나 로마인들이 손에 식품이나 기념품을 들고 차량 사이를 다니면서 승객들에게 사 줄 것을 요구하는 바람에 정체가 가중됐다. 가이드는 차량안 쓰레기들을 밖으로 내쳐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로마에 실업자가 많아, 쓰레기 배출량이 늘어나야 이를 줍는 일손도 늘어 정부가 허접한 공무원으로라도 단기간으로 채용한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위해 쓰레기를 거리 곳곳에 내 던지라니?

　지난해 말 우리 정부가 급조한 단기 일자리 ‘전통시장 안전·환경지킴이’는 일주일에 이틀, 하루에 8시간씩 어깨에 띠 두르고 길에 떨어진 담배꽁초 등을 주워 월 86만원을 받는다. 전국 시장 271곳에 925명이 배치됐다. 대학엔 불 켜진 빈 강의실의 소등을 담당하는 ‘에너지 절약 도우미’ 1243명을 급조했다. 한 달에 20여 일 출근해 두 시간마다 빈 강의실의 불을 끄러 돌아다니면 한 달에 32만원씩 받았다. 폐비닐 등 농촌 폐기물 수거처리 요원 5564명도 뽑았다. 어촌엔 그물·어구를 수거하는 1천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산불방지를 위해 낙엽을 제거한다며 166명을 채용했고, 도로포장 상태와 교통안전 시설 실태조사를 한다면서 2028명을 채용했다. 조류 인플루엔자 방지를 위한 철새 도래지 감시를 한다며 2585명도 뽑았다.

　이런 일자리는 지난해 취업자 수 증가폭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위기에 몰리자 무리하게 쥐어짜 낸 단기 일자리에 불과하다.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 및 공공기관에 공문을 보내 ‘청와대 지시’라며 채용을 독촉하고 그 실적도 점검한단다. 이런 일용 임시직 5만여 개를 만든다고 1200억원 세금을 썼다. 이 대책이 시행된 뒤 취업자 수가 반짝 늘었지만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작년 11월 취업자 증가폭은 전년 대비 16만5천명으로 급증했다가 12월에는 다시 3만4천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주 36시간 이상 근무하는 비교적 안정된 일자리는 72만개 줄어든 반면 실업자나 진배없는 36시간 미만 일자리만 80만명 늘어났다. 원래 일자리가 늘어나려면 민간기업이 투자의욕을 갖고 투자해서 노동자를 채용하고 노동자의 소득은 소비로 이어지며 이것이 곧 경제발전으로 선순환 되는 게 고용시장의 이치다. 그 중심에는 제조업이 있다. 정책기조 전환이 없이 꽁초 줍고 전깃불 끄는 일자리를 세금으로 만들어본들 고용 참사는 계속될 뿐이다.

　실업자 수(122만명)는 1월 기준으로 19년 만의 최고치로 올랐고, 실업률은 4.5%로 치솟아 9년 만의 최악을 기록했다. 지난 설 연휴 때 정부는 “청년 고용률이 늘고 고용의 질이 좋아지고 있다”며 자화자찬하는 홍보물을 배포했지만 3주일 안 돼 고용참사가 또 닥쳐왔다.

　이 모두가 손쉽게 긁어모은 세금으로 일자리 정책을 편 결과다. 정부가 발표하는 일자리 창출이나 출산·복지정책에는 바늘에 실 가듯 세금이 뒤따른다. 내가 낸 세금이 이처럼 허투루 사용되는 것에 납세자들만 억울하다. 한국은 ‘여기도 공짜 저기도 공짜’다. 공짜에 일단 맛들인 국민은 더 많은 공짜에 취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