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도의회도 ‘한통속’

지난 10년 간 지속돼 온 행정체제 개편 문제가 ‘행정시장 직선제’의 틀 속에 갇혀 한 발짝도 앞으로 대딛지 못한 것은 기초자치권을 주민에게 돌려주지 않으려는 제주도와 제주도의회의 집단이기주의 때문이다. 현재 제11대 제주도의회는 과거 도의회와 달리 행정시장 직선제에 부정적인 편이었다. 지난해 12월 제주도가 요구한 행정시장 직선제 동의안 처리를 3차례나 연기하면서 심의를 유보한 데서도 그러한 면모를 찾아 볼 수 있다.

외형상으로는 집행기관이 행정체제 개편 책임을 도의회에 떠넘기려한다는 불만도 내재돼 있었지만 기초자치단체 부활이 빠진 행정체제 개편이라는 점이 더 큰 문제였다. 하지만 결국은 지난달 27일 행정시장 직선제 동의안을 상임위인 행정자치위원회 심의 및 가·부 표결을 하지 않은 채 본회의에 상정해 가결시켰다. 워낙 뜨거운 감자여서 상임위도 상당한 부담을 느껴 자체 표결을 포기했을 것이다.그마나 믿었던 도의회도 한통속이었다.

두 안 주민투표로 결정해야

사실 행정체제 개편 문제를 제주도와 도의회에 일임하는 자체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과거 도지사, 현재 도지사 모두 행정시장을 지휘통솔하는 제왕적 도지사의 권한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도의회도 기초자치단체와 기초의회가 부활되면 지금 자신들이 누리는 권력이 축소돼 마치 한쪽 날개를 잃는다는 위기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동정하고 서로 돕는 동병상련의 관계이므로 행정시장 직선제 요구안 통과는 사실상 예견됐던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행정체제 개편이 주민들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는 점이다. 더 이상 원희룡 도정과 도의회에 맡겨 해결할 일이 아니다. 원 도정의 행정만능주의와 도의회의 의회만능과 이기주의에 빠진 상황에서 후퇴한 주민권익 보호와 지역균형 발전을 도모할 최선의 방안은 단순한 직선 행정시장이 아니라 법인격이 있는 직선 시장 즉, 기초자치단체와 기초의회를 두는 것이다. 원 도정과 도의회는 행정시장 직선제와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동시에 주민투표에 붙여 주민들이 최종안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1~2개의 동을 통합한 대동제를 실시해 동장과 읍·면장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방안도 논의의 대상에 포함하는 것까지도 고려할 만하다.

주민 몫 주민에 돌려줘야

지금 도민이 원하는 것은 행정시 체제 이후 떨어진 행정서비스와 지연된 생활민원 처리, 지역 간 불균형, 무사안일에 빠진 공무원사회의 대변화다. 행정시장을 주민이 선출한다고 해도 4년 임기만 보장될뿐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예산편성 및 집행권과 인사권은 여전히 도지사가 관장한다.

이제는 도민들도 더 이상 행정시 체제를 유지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내몫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도지사와 도의회에 집중된 권한이 기초단체에 환원돼야 진정한 주민의 몫이 주민들에게 돌아오게 된다. 어떻게해서든 기초단체를 두지 않으려는 원 도정과 도의회의 기만적 행태에 더는 속지 말아야 한다. 이미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기초단체 실시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도민들이 동참하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렵다.

원 도정과 도의회는 기초자치제도를 부활하라는 도민적 요구에 직면하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만약 행정시장 직선제 하나만을 주민투표에 붙이려다가는 도민사회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오직 도민이 원하는 행정체제를 선택하겠다는 다짐과 실천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