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치매에 들어서신 어르신 이야기를 들었다. 그 시설에 있는 환우가 되신 할머니께서 방바닥을 두 손으로 휘젓고 있었고 며느리가 뭐하느냐고 물었더니 날레(곡식의 제주 말) 널고 있다고 대답하셨다한다. 그런 할머니를 향해 며느리라는 분께서 수돗물 확 틀어버리쿠다(틀어버리겠습니다)하고 답하며 행동을 자제 시켰다는 말을 듣고 한참을 난감했다. 며느리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시어머니의 행동을 한마디로 정지시키는 일이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또 다른 자아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수돗물을 재빨리 틀어 버린다는 생각은 어떻게 순간적으로 했을까? 그냥 좀 추억에서 놀도록 놔 두지 왜 제지 시켰을까?

요즘 들어서 주변에 치매 환우들을 많이 접하게 되는 것은 내가 그 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이거나 현대사회에 치매환우가 많아졌다는 표시이다.

남의 이야기만 들을 때는 간호하는 가족들이 좀 심하다고 생각들 때도 있다. 아무리 화가 나도 환우니까, 하물며 자신의 부모님이니까 좀 참고 잘해 드리지 하는… 그러나 막상 자기 가족 중에 치매환자가 있을 때, 그것도 증증일 때 겪어야 하는 돌봄의 무게는 몇 배로 가중되는 것을 알기에 누구를 탓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다.

좌우간 아프지 않고 떠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만 특히 자기를 온전히 잃어버리는 치매만 아니라면 다행이다 라고 하겠지만 나이 들면서 건강을 잃어버림으로 오는 어떤 질병인들 가벼운 것이 있으랴?

사람마다 통증을 느끼는 강도도 달라서 어떤 질병과 전쟁이라도 하는 날이면 누구는 뼈만 남고 누구는 살이 너무 불어서 간병인을 힘들게 하는데 다만 치매만 아니라면 좋겠다고들 말한다. 나의 어머니는 위암으로 오는 고통의 무게가 너무 커서 ‘제발 우리 어머니 힘들게 하지 말고 그만 데려가 달라’고 할 정도로 어머니는 힘들게 암과의 전쟁을 하시다 돌아 가셨다. 차라리 통증이 없는 치매였다면 우리는 조금 더 효도하고 좀 더 아프지 않고 덜 불행했을까?

치매 부모님을 간병하는 자녀들의 고통도 그러할까? 환우인 가족보다 본인이 당해야 하는 여러 가지 상황으로 차라리 돌아가시는 것만 못하다는 위험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내 나이 치매와 가까워 오자 조금씩 불안하다.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스스로 떠나지도 못하고 주변을 힘들게 할지도 모르는데 아아, 어쩌란 말이냐? 무의식 속에 잠재된 자아가 순하지 않고 일생동안 참으며 절제해 온 화가 폭발한다면, 그래서는 안 될 일이지만 누가 마지막 말을 자신 있게 할 것인가?

사탕 한 알도 귀한 시절, 먹고 싶은 걸 참으며 살아온 어머니들은 의식이 되돌이표 처럼 과거로 돌아가 버린 상태에서 오래 전 기억을 꺼내어 분뇨가 사탕인 것처럼 조금씩 아껴 먹는 일이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기에 슬프다. 그래서일까? 돌아가시는 날까지 치매증세 없이 통증을 견디다 떠나신 어머니가 오늘은 무척 그립다.

친구도 동료도 더 이상 내 옆에 남아있지 않고 오롯이 홀로 남았을 때 비로소 보이는 나의 어머니!

비록 치매를 앓는다 해도 나는 날레 넌다는 어머니를 향해 수돗물을 확 틀어 버리겠다는 말은 하지 않으리라. 그런 어머니라도 오래 곁에 계셔 주기만 해도 그것이 행복이고 기쁨이니까. 그렇다고 그 며느리를 욕하는 건 아니다. 절대로.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잘하자는 것일 뿐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어머니는 내가 살아가면서 힘이고 의지이고 거름이니까.

누가 어머니의 양분을 먹고 살았음을 부정하랴, 자녀는 누구라도 다 부모에게서 나오는 양분을 먹고 살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하여 나 또한 부모로 자녀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는 것이리. 치매어머니를 너무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며느님들이여! 치매 시어머니를 끔찍이 아껴 보시라. 이왕 수고하는 거 부모님 돌아가신 후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마시라. 더 줄 것이 없고, 다시 살아온다 해도 더 이상 잘할 수 없노라 할 정도로 헌신하고 봉사하시라. 그것이 자녀 된 도리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은 힘든 간병자의 입장이지만 머잖아 도 우리가 그 어머니의 자리에 있게 될지...

나의 어머니가 치매환우가 되어서라도 다시 이 딸 앞에 서 주신다면 나는 아낌없이 효를 하리라. 절대로 어머니께서 하시는 일에 토를 달지 않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