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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리모델링
고해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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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13  18: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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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시음하러 가잔다. 아들 친구 H의 호출에 식구들이 모두 나선다. 겨울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날, 설 쇠러 내려온 손자는 차에서 잠들더니 당도한 목적지에서도 낮잠 삼매경이다.

 건축에도 어떤 흐름이 대세인 현실이다. 이에 반해 옛 건물을 살려내기 위해 혼신을 쏟아놓은 곳이 있다. 건축학을 전공한 H의 한여름 날에 흘린 굵은 땀방울과 맞바꾼 시간과의 재회이기도 하다. 그의 친가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거주했던 제주시내의 20평 주택, 돌아가신 후 세놓던 건물의 대변신이다.

 서까래와 기둥 등 최대한 원형의 틀은 살려내고, 문틀과 구들장도 적재적소에 놓여 인테리어나 소품으로 자리한다. 도배지를 살짝 벗은 흙벽도 당당하니, 보존시키랴 애쓴 흔적들이 역력하다. 쉬운 길을 모색하지 않고 조상의 얼까지 고스란히 담아내고자, 지난한 과제에 땀범벅을 자처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천정을 지탱하던 서까래들이 찬찬히 내려다본다. 그 가운데 휘어진 재목에서 유연한 살가움이 전해온다. 묵은 것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재현하는 안목만큼이나 소통의 공간이다. 주인공이 된 골격들의 연륜에서 옛 집주인의 목소리가 배어나올 듯 친근감이 느껴진다. 적재적소에서 기지개 켜며 발돋움한 구석구석들이 생명을 부여받자 눈빛 반짝인다. 원형을 살려내기 위한 고집스런 행보의 결과물이 아니던가.

 기존 주택의 골격을 30평 건물 안으로 고스란히 들인 셈이다. 높은 천정과 유리 외벽을 통해 주변의 자연과 하늘까지 품는다. 초심에 흔들리지 않으려 독특한 접근법으로 시작한 만큼이나 공을 들인 결과물이다. 새 공간과 옛집의 미적 요소의 어울림을 몇 번이나 그리며 궤도 수정을 했을까 짐작된다. 신구의 상생으로 모색해낸 개성적인 시도에 다름없고 현란하게 꾸미지 않아도 매력적이다. 세월에 나앉은 시간들을 그러모을 수 있는 용기가 부럽다. 울타리를 줄곧 지키던 키 큰 감나무의 빈 가지로 물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구건물이 업은 시간들을 꼼꼼히 읽어내고 의미를 찾아내 친환경적으로 접목한 예지가 더 돋보이는 까닭이다. 어쩌면 구식의 유산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어르신들의 정신유산과 함께 철학까지 수용한 내력이 돋보이는 연유다. 여러 행간에서 잊혀져가는 고향을 만나게 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촉매제들의 작동에 뒷짐 지고 있던 감성이 일어선다. 통유리 너머 하얀 고무신을 신고 울타리의 감나무 그늘 밑을 거닐던 걸음들도 마주할법하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공간, 리모델링과 증축으로 간절한 만큼 재탄생된 공간이다. 자고나면 경쟁하듯 덩치를 키우며 높아만 가는 건축물들과 견줄 바가 아니다. 상생하기 위한 희망의 곳간으로 뜨겁게 자리매김 중이다. 모름지기 과잉소비 시대의 경종과 다름이 없고, 낡아가던 유산을 재탄생시킨 조용한 혁명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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