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문=이서희 기자] 한라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인 구상나무의 멸종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경고가 나왔다.

기후변화 등으로 한라산 구상나무의 떼죽음(집단고사)이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드러나 더 이상 대책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는 진단이다.

시민단체 녹색연합은 “남한 최대 규모의 고산 침엽수 군락인 한라산 구상나무 서식지가 90% 가까운 고사율을 보이고 있다”며 “멸종이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밝혔다.

녹색연합은 2016년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약 3년에 걸쳐 주요 아고산대(해발고도 1500∼2500ｍ)에 서식하는 구상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등 침엽수 집단 고사 실태를 모니터링했다.

한라산과 지리산, 태백산, 오대산, 설악산 등에서 고산침엽수인 구상나무와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등의 집단고사 실태를 조사한 결과, 구상나무 군락의 떼죽음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는 녹색연합의 밝힌 ‘2019 한반도 고산침엽수 실태조사 보고서’ 가운데 한라산 구상나무의 떼죽음 실태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구상나무는 어떤 수종인가
구상나무는 소나무과(科) 전나무속(屬)에 속한 ‘한국 특산 고산수종’이다. 한라산을 비롯해 지리산과 덕유산, 가야산에 서식하지만, 한라산과 지리산이 가장 넓은 집단 서식지가 있다. 높이 18m까지 자라며, 모양이 빼어나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로 애용된다.

가문비나무와 종비나무, 분비나무와 함께 한반도 기후변화의 척도가 되는 ‘기후변화 지표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 나무들은 기후변화에 의한 평균기온 상승이 지속될 경우, 분포면적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는 종이다.

구상나무는 2013년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에 의해 ‘멸종위기종(EN)’으로 지정돼 레드리스트(Red List, 적색목록)에 올라있다. 이 리스트에는 개체군의 크기와 지질학적 분포지 등을 근거로 해당 종이 얼마나 멸종위험에 근접해 있는지를 9가지 단계로 분류했다.

구상나무는 1998년 ‘위기 근접종(NT)’에서 15년 만인 2013년 ‘멸종 위기종’으로 2단계 상향 조정됐다. IUCN은 만약 구상나무 분포면적이 10㎢이하로 축소된다면 ‘절멸위급(CR)’으로 분류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구상나무의 개체 수가 절대적으로 적지는 않기 때문에 환경부가 지정하는 멸종위기종에는 속해 있지 않다. 그러나 국립수목원은 구상나무를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따른 생육환경의 변화로 멸종 또는 감소 위기에 놓인 산림 식물 종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2010년 구상나무를 ‘기후변화 취약 산림식물종’으로 지정했다.

▲한라산 구상나무 집단고사 실태
한라산 백록담과 성판악 사이 진달래밭대피소 일대에는 전 세계에서 최대 규모의 구상나무 서식지가 있다.

한라산연구소가 2007년 6월 ‘한라산 구상나무’를 통해 밝힌 한라산 구상나무림의 전체 면적은 603.3㏊에 이른다. 성판악 등반로 주변의 진달래밭 일대의 구상나무림이 301.3㏊로 전체의 50%를 차지한다.

이어 영실등반로의 구상나무림이 87.1㏊(14%), 돈내코계곡 발원지 및 상류 일대 62.1㏊(10%), 와이(Y)계곡 상류 33.6㏊(6%), 관음사 등반로 24.6㏊(4%) 등의 순이다.

이후 2009년 3월 환경부는 기후변화 때문에 한라산 구상나무 숲이 3분의 1이 사라졌다고 발표했다. 한라산 해방 1000m 이상 고산지대에서 구상나무 숲의 면적은 1967년 935.4㏊에서 2003년 617.1㏊로 감소했다고 환경부가 펴낸 ‘국가 장기생태연구 2008년도 조사결과’에서 밝혔다.

36년 동안 구상나무 숲이 전체의 34%가 줄어든 셈이다.

한라산 구상나무 집단고사 현상은 점차 심각해져 2014년 9월에는 한라산 구상나무의 절반 가량이 말라 죽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라산연구소는 2013년 10월부터 2014년 4월까지 한라산 내 구상나무 분포지 10곳을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벌인 결과, 구상나무숲 내 구상나무 수는 1㏊당 2028.3그루로 나타났으며, 이 가운데 45.9%인 930그루는 고사목으로 파악됐다. 절반에 가까운 구상나무가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고사비율은 윗세오름 일대가 67.2%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성판악 등반로 해발 1800m 일대 65%, 해발 1700m 일대 60.1% 등이다. 백록담 일대도 상대적으로 생존 비율은 높았지만 고사 비율이 30%에 육박하고 있다.

이는 해발이 낮은 지역부터 구상나무 분포 면적이 급감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2010년 이후 말라 죽은 구상나무가 전체 나무 고사목의 20.7%를 차지할 만큼 구상나무의 고사가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녹색연합은 한라산 구상나무의 고사 현장은 하늘에서 보면 더 확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해발 1700m 부근의 너른 사면에서 띠처럼 이어지는 고사목 군락지는 잿빛을 띨 정도로 고사 개체가 많음을 보여준다.

고사목은 크기에 상관없이 1~2년 된 고사목부터 10년이 지난 고사목까지 다양해 시간적 흐름에 따른 양상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완전 고사한 나무는 하얗게 앙상한 뼈를 드러낸 채 고사된 상태에서 사선으로 비스듬히 쓰러져 있거나 뿌리째 뽑혀 있다.

건강하게 남아 있는 구상나무를 발견하기는 힘들었으며, 간신히 살아 있는 구상나무도 잎이 시들어가고 있다고 녹색연합은 전했다.

▲구상나무는 왜 말라 죽는가
한라산연구소는 1990년대까지 한라산 구상나무의 고사 원인으로 나무의 노령화와 종간 경쟁 등 자연적인 요인을 꼽았다.

그러나 2000년데 이후부터는 기후변화에 의한 적설량 감소와 차가운 바람에 의한 건조 등이 고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겨울 기온이 상승하면서 적설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생육 활동을 지속해야 하는 상록수가 광합성을 하는 데 필요한 수분이 부족해 생장에 큰 지장을 받는 다는 것이다.
실제 2015~2017년 한라산 윗세오름과 진달래밭, 어리목, 성판악 등 고산지대의 적설량을 비교해 보면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지역의 최심적설량(며칠 동안 내린 눈이 가장 많이 쌓였을 때 측정한 값)은 어리목의 경우 2015년 184㎝에서 2016년 164㎝로 감소한 후 2017년에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80㎝로 급감한다.
진달래밭 역시 2015년 178㎝에서 2016년 143㎝, 2017년 70㎝로 낮아졌다. 어리목은 2015년 54㎝에서 2016년 89㎝로 증가했으나 2017년 다시 53㎝로 감소한다.

성판악은 2016년 89㎝에서 이듬해 82㎝로 소폭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겨울철 기온이 계속해서 상승하면, 한랭기간이 짧아지고 따뜻한 기간이 길어져 한랭한 기후 조건을 선호하는 침엽수는 기온 상승에 적응하지 못해 줄어들게 된다.

한라산의 10년 단위 평균 기온을 보면, 1981~1990년과 1991~2000년에는 15.3도를 유지했으나, 2001~2010년에는 15.7도로 상승한 후 2011~2016년에는 15.8도로 상승했다.

또 1~4월 봄철 기온 역시 높아지면서 겨우내 내린 눈의 녹는 속도가 빨라지고, 침엽수가 이용할 수 있는 물이 흘러가 버리거나 증발하는 시간이 짧아질 수 밖에 없다.

태풍과 집중강우로 뿌리가 흔들려 성장기반이 약해지는 것도 고사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1300~1400m 사이의 구상나무 군락에서 태풍과 해풍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지역에 따라 구상나무의 고사율과 생육상태가 달라지는 것이 나타났다.

구상나무의 급속한 분포면적 감소도 고사율을 높이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된다. 구상나무는 각 분포지 간 거리가 멀어 유전자 교환이 이뤄지는 데 어려움이 있어 개체수 유지가 힘들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분포면적의 감소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상황이라고 녹색연합은 설명했다.

▲구상나무 보존, 대책은 없나
구상나무 등 한반도 남한지역의 아고산대 고산침엽수의 집단고사는 종 자체가 사라지는 멸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즉, 이런 흐름이 지속될 경우 한반도 산림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의 균형이 무너질 것은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녹색연합은 구상나무 등 아고산대 침엽수 보전을 위해 몇 가지 대응 방안과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침엽수 종의 현황을 조사하고 그에 따른 보전·복원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구상나무 등 7대 고산침엽수종을 중심으로 분포 패턴을 분석하고 현장에서 피해 상황을 파악한 후 분포현황지도를 작성해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 현재 고사중인 침엽수들의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보는 실험도 필요하다.

두 번째는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보전·복원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각 기관에서 산발적으로 진행하는 고산침엽수 보전 사업을 통합적인 차원에서 관리하는 방안이다. 현재까지 각 기관에서 개별적으로 진행했던 관찰 결과와 연구 자료들을 공유하고 통합해 범국가적인 컨트롤타워를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고사별 상황에 맞는 보전·복원 대응 시나리오가 마련돼야 한다는 점이다. 종의 정밀한 군집 또는 개체 생태학적 특성 파악과 자생지 주변의 후계림이나 별도의 공간에 보존원 조성을 통한 현지 외 보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경쟁구종 관리 등을 통해 종자발아 및 생육 환경 조성을 통한 현지 내 보전사업도 동시에 진행할 필요가 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기후변화 시대의 생태계 보전을 위한 정책을 시민들과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후변화가 한반도의 자연과 산림에 현실로 다가와 고산침엽수의 멸종위기로 이어지는 상황을 국민들과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통해 민간과 학계에서 보전 관리 프로그램을 구축할 수 있는 환경을 장려할 수 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고산 침엽수의 집단 고사는 멸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며 “이런 흐름이 지속하면 한반도 산림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의 균형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