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교직을 시작한 이래 수업 중 종종 듣게 되는 소리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네 맘대로 하시오.”

“선생님, 화장실에 조~옴 ……” 이 말은 언제나 뒤가 흐리다. 거의 뒷말이 들리지 않거나 아예 없다. 뭐 “… 다녀오겠습니다.”나 “…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정도가 생략된 말이겠다. 어쨌든 아이들은 이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한다. 무엇인지 모를 어색함, 거절에 대한 불안감, 설령 허락을 받더라도 뒤끝을 따라오는 찌질함 같은 것이 작동되는 탓인지도 모른다.

꽤 오래 전부터 학기초 첫 시간에 이 말에 대해 항상 들려주는 말이 있다. 교사로서 나를 관통하는 개똥철학 같은 것이기도 하다.

“수업 중 화장실에 갈 사람은, 손 번쩍 들고 ‘화장실에 다녀오겠습니다’ 같은 말은 하지 마세요.”

이러면 학생들이 소심한 눈빛을 흐트러뜨리며 조금은 두렵다는 듯, 조금은 경멸에 찬 눈빛으로 되쳐 본다. ‘뭐야 저 인간, 꼴통인 거 아냐? 이거 괴롭겠는데…’ 하는 표정들이 눈치를 본다.

“화장실 가는 것에 대해 ‘손들고 허락받고 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대부분 멍한 표정으로 변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아이들이 질문에 참 약하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눈치를 살피면서도 별 대답이 없다. 수없이 봐온 상황이라 홀로 묻고 홀로 답한다. 뭐 개똥같은 소리에 지나지 않지만.

“난 화장실에 가는 것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신진대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생리적 현상을 허락할 수 있겠습니까? 나에겐 그런 권한도 능력도 없습니다.”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래?’ 하는 어리둥절함이 번진다.

“그것은 허락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쌀 건가요?” 이쯤 해야 비로소 몇몇이서 웃는다.

“화장실 가는 것조차 허락받는 사회는 정말 무서운 사회죠. 여러분은 이 무서운 사회에서 똥오줌 싸는 것마저 허락받으며 살도록 길들여져 왔습니다. 생리현상마저 명령에 의해 움직이도록 기계화되고 있는 것이죠. 나에게는 그런 것을 허락할 능력이 없으니 허락받지 마세요.”

“그럼 어떻게 해요?” 참 말귀를 알아먹지 못한다. 하기야 언제 독서를 해봤어야 말이지. 독서라는 게 고작해야 공부 잘 하기 위한 수단이거나 스펙을 쌓기 위해서거나 생활기록부 장식하기 위한 억지춘향이 아니던가 말이다.

“화장실에 갔다 올 사람은 조용히 갔다 오세요. 이제 고딩 정도 됐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한 가지 지켜줘야 할 것은 가는 목적 이외의 딴 짓일랑 삼가주시고…”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공간이다. 교육은 성장을 목적으로 한다. 성장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존엄을 깨닫고 자주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고능력과 생활능력을 키워가는 것이다. 이것을 사회 틀 속에서 공존과 상생의 모습으로 확장해 가는 것이 교육의 본질일 것이다.

이런 교육이 진행돼야 할 공간에서 그 교육이란 이름으로 ‘노예화’가 진행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학교 안에서 살펴보면 길들여진 아이들이 성공이라는 바늘구멍을 향해 내몰리고 내달아가는 모습은 이미 굳어진 슬픈 풍경화다. 오죽하면 스무 살이 다되어가는 아이들이 화장실도 스스로 못가겠는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질서가 잡히겠냐? 참을 줄 아는 것도 교육이다’라는 괴상스런 협박 아래 아이들은 똥오줌도 스스로 쌀 수 없는 노예의 삶을 강요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