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식 교수

사람들은 미술이란 아름다움에 관한 실현 혹은 행위라고 굳게 믿어 왔고 현재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아름다운 대상 -사람, 사물이건 간에- 에 찬사를 보내며 수백여 년 동안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익숙해진 미술 인식은 과거의 정형화된 미적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일탈을 하려고 하면 가차 없이 제동을 건다. 미라는 것이 개인의 편차를 반영하지 않고 이처럼 굳어진 관습처럼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 미술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무엇’에 대한 것이라는 우리 머릿속에 고착된 인식범주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인가.

‘이상적인 미’를 추구했던 고전주의 형식 미술에서는 대상과의 일치를 전제로 했다. 즉 그려지거나 조각된 대상은 원본과 닮아야 한다는 것이 제1원칙이었다. 여기에 덧붙여 닮음도 일반적인 닮음이 아니라 이상적인 재현이어야 했다. 인체의 비례는 기본적으로 8등신 이상이어야 하며, 머리에서 발끝까지 신체의 부분 부분들은 당시 사람들의 비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함을 지향했던 것이다. 이처럼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이상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한 결과 고전주의 형식 미술들은 마치 과도한 포토샵 처리로 대상을 왜곡한 듯 현실과 점점 멀어져만 갔다.

피에르 만초니/Artist’s Shit/1961년 제작/높이 5cm, 지름 6.5cm

‘이상적 재현의 시대’는 이후 재현을 부정하는 다양한 미술운동으로 인하여 쇠락의 길을 걷는다. 미술의 본질이 닮음을 재현하는 데 있지 않기에 전통적 재현으로부터 조형의 자율성을 획득하기 위한 대(大)탈주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20세기 이후의 미술은 원본의 재현이라는 절대적 교리에서 벗어나 의도적으로 표현의 ‘차이와 다름’을 지향한다. 닮음으로부터 거리 두기는 현대성에 다름 아니며, 닮음에서 벗어난 미술은 이제 모든 주제와 모든 재료를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61년 이탈리아의 피에르 만초니는 높이 5cm 지름 6.5cm의 깡통에 특정 내용물을 넣고 통조림 제조방식처럼 밀봉하였다. 깡통 겉면에는 제조일자와 내용물 정보를 인쇄해 놓았는데, 풀이하면 이렇다. <예술가의 똥, 용량 30그램, 신선하게 보존됨, 1961년 5월 생산되어 밀봉됨>. 요즘 참치 캔 크기의 분변 덩어리는 같은 무게의 금값에 환산하는 금액으로 1961년 당시에 전량 판매되었다. 최근 경매에서는 개당 가격이 10만 달러를 상회하여 거래됐으며, 총 90개를 제작했으니 무려 900만 달러 이상이다. 현재도 가격은 계속 치솟고 있으니 속된 말로 엄청나게 남는 장사를 한 것이다.

사람들이 이상적인 아름다움은커녕 심히 역겨울 정도인 <Artist’s Shit>을 앞 다퉈 전량 구매한 이유는 무엇일까. 포장된 캔이 예뻐서? 설마 예술가의 똥이 아름다워서? 이상적인 재현의 시대를 고별한 후 미술은 이제 모든 것을 수용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개념’을 수용한다. 원본과의 동일성을 사유의 본질을 가로막는 인식론적 장애로 생각하는 현대의 예술가들은 눈에 보이는 외계대상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세계를 인식하려 한다. 미술이 재현을 떠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