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문
오피니언제주칼럼
인간은 지향한다……고로 인간은 존재한다…
양경식  |  제주대 교육대학 교수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6.13  15:22:46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기원전 약 15천 여 년 전 어느 날, 호모 사피엔스에 속하는 소수의 크로마뇽인 몇몇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동굴 깊숙한 곳에 기어 들어가 기묘한 들소 그림을 제작한다. 지하 동굴의 가장 깊숙한 곳을 찾아서 원래부터 있었던 바위의 굴곡을 이용하여 부족의 먹잇감인 들소의 머리, 몸통, 다리, 꼬리까지 단 한 부위도 빠짐없이 그리기 시작한다. 사냥을 나가기 전 그려진 이미지에 주술적 공격을 가하는 이들은 그려진 들소를 쓰러뜨리면 현실의 들소가 쓰러진다고 확신을 했다. 그들은 이미지와 실제에 대한 인식이 아직 모호하며 둘을 동일하게 여겨 창으로 찌르는 신성한 의식을 치른 후에야 비로소 사냥을 나갔다. 이때의 사냥은 다만 형식일 뿐 현실의 들소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이미 생명을 다한 것이다.

 

들소의 생생함을 더하기 위하여 철이 산화한 산화철로 적갈색을, 철의 탄화물로 황색계열을, 망간 산화물로 진한 청색을, 윤곽선이나 세밀한 부분은 동물의 뼈를 태워 얻어낸 검정색을 사용하였다. 거칠게 저항하는 야생의 들소를 미리 제압하기 위하여 이 알타미라 혹은 라스코 동굴벽화를 그린 이름 없는 화가들은 제사장이자 주술사이며 마술적 상징을 다루는 문명 이전의 예술가였다. 이 선사시대의 주술사는 자연과 마주하며 실제 자연에 그림을 그렸고 자연을 지향했다.

 

중세 시대 하늘을 향해 상승한 고딕 양식의 첨탑 내부에는 중세 장인들이 신의 영광을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놀라운 빛으로 지상에 현현하였고, 탑신 하부에 연결되는 아치형 천정에는 불가능한 자세를 유지하며 초인적인 인내로 매달려 그리스도의 계시를 알리는 도상들을 그려 놓았다. 하늘에 닿을 듯 거대한 스케일의 교회와 대성당들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렇듯 중세의 예술가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유일신을 지향했다.

 

   

들소 무리를 그린 선사시대 동굴벽화 부분 / 알타미라 / 스페인, 1879년 발견

하늘로 향했던 지향성은 전성기 르네상스에 와서 인간의 눈높이로 내려왔다. 르네상스에 있어서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며 무한발전 가능한 존재로 규정되었다. 인문주의를 바탕으로 인간이 만물의 척도인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자연과 나 사이에 내 눈 높이에 맞춰 화폭을 수직으로 세워 놓고 가시적 대상을 원근법으로 관찰하며 세계와 인간을 재구성하였다. 르네상스는 신의 세계가 아닌 인간지향적인 시대였다.

 

20세기에 일어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무려 5천만 명에 가까운 인류의 죽음을 가져왔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했던 극한 광기는 인류를 절망케 했으며, 전쟁 후의 인간은 서구문명의 근간을 이뤘던 합리성, 이성, 철학, 예술, 제도 등 모든 것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미술 역시 화면에서 격변의 성향이 두드러졌다. 공장에서 생산된 사물을 그대로 제시, 무의식의 세계 탐구, 바닥에 깐 화폭에 물감을 흩뿌리고 다니는 행위, 스스로 파괴되는 기계, 멀쩡한 화면을 절개하는 행위 등을 거침없이 해나갔다. 이성 중심주의에 대한 거부와 파괴였다.

 

선사 이전 동굴벽화로부터 이어져 온 이 모든 행위들은 인간임을 지향하는 행위이며, 인간의 존재 방식을 인식하려는 인간으로서의 생존 행위인 것이다. 인간은 지향한다. 고로 존재한다.

< 저작권자 © 제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63113)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공로 9-1(도두일동)  |  대표전화 : 064)744-7220  |  팩스 : 064)744-7226
법인명: ㈜제주신문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제주 아 01014   |  등록일 : 2007년 2월 12일  |  대표이사/발행/편집인 : 부임춘
청소년보호책임자 : 부임춘
Copyright 2011 제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ejupress@jejupres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