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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돌목장의 왕따나무
김구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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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8  09: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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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여왕인양 화려했던 장미들이 어느덧 빛바랜 모습이 되어 담벼락에서 떨어지고 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잠깐 동안이나마 일상을 떠나 풀과 나무와 하늘, 바람과 한 가지로 숨 쉬고 느끼고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다.

며칠 전 한림에 있는 이시돌회관으로 갈 일이 있었다. 평화로를 달리다가 새별오름을 지나 목장지대라 가축 분 냄새가 풍긴다는 것을 알면서도 금악으로 가는 샛길로 들어섰다. 이상하리만치 그 길에는 소싯적 집에서 기르던 늙은 암소의 애절한 눈물을 기억하게 한다. 가난한 집에 금승으로 들어와 농사일만을 하다가 늘그막 이른 새벽, 삶을 체념이라도 한 것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며 도축장으로 끌려 나가 생을 마감했다. 그때 암소의 초롱초롱 맑은 눈 속의 눈물을 보았다. 매정하리라 봤던 아버지의 눈에서도 같은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암소와 아버지는 같은 강물이 아닌 시간 속에서 만났고 헤어졌다. 강물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의 자리는 언제나 같은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은 달랐지만 그들과 나는 같은 공간에 있었고, 앞으로도 같은 추억이라는 공간 안에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이 길을 자주 이용했다.

오늘도 가축 분 냄새가 풍기는 샛길은 항상 한적한 곳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편도 일차선 양쪽 가에 승용차들이 세워져 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삼나무 사이 수로를 넘어 목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잠깐 차를 세워 그곳을 바라보았다. 푸른 목장 한 가운데 고적하게 서있는 나무가 나타났다. 나무 등 뒤로는 새별오름이 마치 나무를 품는 모습이다. 사위는 푸른 바다를 연상하리만큼 망망대해인데 50년쯤 돼 보이는 나무는 모슬포 앞바다를 쳐다보듯 비스듬히 가지를 내리고 있었다. 전봇대 둘레보다 조금 큰 정도의 나무 밑 둥이 2미터를 오르고, 두 개의 가지에서 서너 개의 가지가 뻗어 가지의 우듬지에는 연록색의 잎을 하고 있었다. 밑 둥에 박힌 옹이가 예사롭지가 않다. 사진기를 메고 있는 중년남자에게 저 나무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왕따나무입니다.”당황했다. 내가 물은 것은 수종이 무엇인가였는데.

몇 년 전 유럽 여행에서 프랑스 평원을 지날 때마다 홀로 당당하게 서 있었던 한 그루의 나무들이 떠올랐다. 평원 속의 한 그루의 나무는 우연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가히 상징적인 것이었다. 나무는 평원의 주인이었고, 주변을 지키는 수호신과도 같아 보았다. 분명 오래전 그 주변에도 많은 나무들이 있었을 것이지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그 나무의 존재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거대한 평원과 홀로 서있는 나무! 그것은 공간과 고독을 의미한다. 공간이란 삶의 현장이며 고독이란 어떤 무엇보다도 귀중한 가치를 누구에게나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나 식물에게도 마찬가지다. 이영하 선생은 신록예찬에서 나무의 고독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안개에 잠긴 아침의 고독을 알고, 구름에 덮인 저녁의 고독을 안다. 부슬비 내리는 가을 저녁의 고독도 알고 함박눈 펄펄 날리는 겨울 아침의 고독도 안다. 나무는 파리 옴쭉 않는 한여름 대낮의 고독도 알고, 별 얼고 돌 우는 동짓날 한밤의 고독도 안다. 그러면서 나무는 어디까지든지 고독에 견디고, 고독을 이기고 고독을 즐긴다.’평원에 서있는 나무는 결코 홀로가 아니다.

하잘것없는 미물에게도 붙여지는 명명은 존재의 이유가 있다. 이시돌목장 평원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에게왕따의 이름은 너무나 세속적이다. 그에게 걸 맞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줘야 하지 않을까.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나무에게도 존중해야 할 격이 있다. 새별오름과 동행하는 나무에게 새벽을 여는 의미에서희망을 주는 나무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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