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문=임청하 기자] #평생 농사 지으며 오롯이 써 내려간 일기

▲ 책 '고개만당에서 하늘을 보다'.

고광민 작 ‘고개만당에서 하늘을 보다’ (한그루, 432쪽, 2만5000원)

원초 경제사회에서 자연과 더불어 삶을 꾸렸던 사람들의 기록을 한데 모아 엮어온 고광민 민속학자의 새 책이 나왔다.

이번 책은 울주 지역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김홍섭 어르신의 농사 일기를 풀어냈다. 김씨는 울산시 울주군 하삼정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2004년 대곡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면서 대정마을로 터를 옮겨 지냈다.

그는 1955년부터 농사일기를 쓰기 시작해 지금도 이어오고 있다. 일기에는 농사에 관한 기록뿐만 아니라 당시의 물가, 시장에서 거래되던 물건의 종류와 값, 경조사와 축의금의 변화, 마을의 살림 등 지역의 생활사가 담겨 있다. 책은 당시 쓰이던 지역의 고유한 언어로 기록됐다.

고광민 선생은 울주대곡박물관에서 이 일기를 우연히 발견하고 어르신을 찾아 그간의 일기를 보게 됐다. 그중 기록이 충실하고 오래된 1962년의 일기를 택해 내용을 풀이하고 해석을 덧붙여 생활사의 조각을 맞췄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졌다. 1부에는 어르신의 일기를 월별로 나눠 주석과 해설이 수록됐다. 2부는 일기의 내용이 주가 되면서 어르신에게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소론이 담겼다. 땔나무의 1년, 소의 일생, 논거름·밭거름의 1년, 고개만당의 운명, 두레, 언양장에 나타난 바닷물고기의 추적, 콩쿨대회 이전 마을의 민속 등을 살폈다. 마지막으로는 어르신 일기의 원본이 수록됐다. 비록 일기의 배경이 된 마을은 물속에 잠겼지만, 그곳의 생활사를 통해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지혜를 만날 수 있다.

한편, 책의 특별기획 실무를 맡은 박미연씨는 김홍섭 어르신과 일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김홍섭 어르신은 4년 4개월의 군복무기간을 마치고 24살 때인 1955년 12월에 제대했다. 휴전 이후에도 일정 병력을 유지하느라 제대가 보류되어 복무기간이 길었다. 고향에 돌아와 농사에 전념했다. 25살에 농촌지도소의 농촌자원지도자가 되었다. 농업과 관련된 각종 교육을 받고 마을 사람들에게 다시 그 내용을 교육하는 일이었다. 20여 년간 이 일을 계속했고, ‘농학박사’라는 별명도 얻었다. 집안이 어려워서 초등학교만 졸업했지만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수산대학을 다니던 이웃 마을 손수일에게서 영어와 수학을 배웠다. 한문은 혼자서 ‘통신강의록’이라는 책을 보면서 공부했다. 농사와 공부를 병행하면서 24살 때부터 농사일지를 꾸준히 썼다. 45살이 되면서 농촌자원지도자를 그만두고 농사일에만 전념하였다. 슬하에 2남 4녀가 있고 모두 결혼했다.’-책 ‘나의 살던 고향은…’ 67쪽. 

김홍섭 어르신은 이번 책을 펴내면서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반성하고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가지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해 계속 써 내려갔다”며 “어언 64년이란 세월이 지나 내용을 살펴보니 생활사의 일부와 물가 변동, 농산물 가격, 경조사 축의금의 변화 등 시대의 변천과 추억의 기록들이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원래 일기를 공개할 생각은 없었지만 우연한 기회로 대곡박물관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고광민 선생을 만나 각고의 노력 끝에 책의 초고 편집본을 완성했다”며 “이 책을 통해 지난 세월 울주 지방의 농경 생활 문화의 일부를 후세에 보전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오랫동안 꺼내지 않던 침묵을 노래하다

▲ 시집 '오키나와의 화살표'.

오승철 시집 ‘오키나와의 화살표’(황금알, 96쪽, 1만원)

‘절 몇 채 품었다고 삿된 마음 삭을까?/ 하늘 아래 내 사랑 이 골 저 골 울려놓고/ 봉우리/ 봉우리마다/ 배가 고파 달이 뜬다’ (오승철 시 ‘팔공산’ 中)

한 편의 시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시인의 침묵이 있어야 한다. 또 한 편의 시조가 쓰이기까지는 일 년이, 때로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시간은 점점 흐르지만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시는 오로지 시인의 머릿속에 있다. 서귀포 위미에서 태어난 시인은 영혼이 간간이 흐느끼고 울부짖는 침묵의 소리를 오랜 시간동안 묵혀오다가 세상에 공개했다.

그간 침묵으로 버틴 수많은 영혼이 한 편의 시집으로 나오기까지의 땀이 작품 곳곳에 배어 있다. 시인은 그 누구도 꺼내지 않던 침묵을 깨뜨리면서 세상 밖으로 꺼낸다. 사실 침묵은 말하지 않는 하나의 확실한 말이다.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전하는 울림

▲ 책 '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소설 ‘눈과 사람과 눈사람’ (문학동네, 224쪽, 1만2500원)

‘어째서 아무도 보지 못했을까. 어째서 아무도 듣지 못했을까. 어떻게 모두가 한 가지만을 바라보고 말하는 일이 생길 수가 있을까. 그 누구도 어떤 것을 전혀 못 보고 못 듣는 일이 어떻게 생길 수가 있을까.’ -임솔아 작 ‘줄 게 있어’ 中

2015년 장편소설 ‘최선의 삶’에 이어 임솔아 작가가 두 번째 소설작품으로 찾아왔다. 소설 ‘눈과 사람과 눈사람’은 시로 등단한 작가가 시적이면서도 단단한 목소리를 함축적으로 써 내려간 여덟 편의 작품이 수록됐다.

작품은 18살부터 25살까지 등장인물이 나이를 먹는 순으로 배치됐다. 작품에서는 스스로를 비정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세상에 반발하며 홀로 싸우던 인물들이 점차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타인과 함께하게 된다. 이들을 두고 작가는 “이들은 여태 내가 겪어온 것들을 함께 겪은 동지들”이라고 말한다.

#매일매일 즐거운 나의 집? 과연 그럴까

▲ 책 '안전한 나의 집'.

정윤 소설 ‘안전한 나의 집’ (비채, 388쪽, 1만3800원)

‘울타리에 갇힌 후에야 알았다. 가장 잔혹한 일들은 집안에서 일어난다는 걸.’

여기 재미한인 작가가 직접 쓴 재미한인 가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1970년대 미국으로 와서 성공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이야기하지만 아내는 늘 뒷전인 남편,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이상할만큼 순종적인 아내, 바깥 세상과 집안 세상의 괴리에 적응하는 아이, 이들을 둘러싼 한인사회가 등장한다. 가족은 주일에 무조건 교회에 가며 부엌에는 며느리들만이 드나든다.

작품은 이들을 과연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위험한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가족과 사랑, 전통 등 한국인의 마음 깊이 내재한 모순을 수면 위로 올린다. 익숙하지만 실은 깊게 생각하지 못한 주제들에 대해 섬뜩하게 묘사하면서 극적인 사건과 스릴, 반전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작품은 해외교포 1.5세인 재캐나다한인 최필원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한 줄기 빛은 어둠을 삼키지

▲ 책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스즈키 루리카 소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놀, 288쪽, 1만4000원)

초등학생 시절부터 일본의 대표 출판사 쇼가쿠칸에서 주최하는 12세 문학상을 3년 연속 수상한 천재 작가 스즈키 루리카가 14세 때 발표한 데뷔작이 국내에서 출간됐다. 작품은 엄마와 단둘이 지내는 초등학교 6학년생 다나카 하나미의 이야기를 다룬 다섯 편의 연작 단편소설이 실렸다.

다른 가족없이 모녀가 펼치는 유쾌하고 애틋한 이야기는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순수한 시선과 통찰력이 오롯이 담겼다. 솔직한 문장으로 담겨진 다나카 모녀의 일상에서는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그 어떤 일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모두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데에 있다. 모녀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가느다란 빛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결국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과학사의 흐름을 뒤집었던 이야기는?

▲ 책 '과학사 대논쟁 10가지'.

핼 핼먼 작 ‘과학사 대논쟁 10가지’ (가람기획, 304쪽, 1만6000원)

대중 과학 저술가로 활동하는 핼 헬먼이 역사 속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지동설 대 천동설, 진화론 대 창조론 등 과학계에서 큰 논쟁으로 불거졌던 사건 열 가지를 20년 동안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선정해 엮었다.

책은 17세기에서 20세기 사이 과학계에서 펼쳐졌으며 가장 격렬한 승부라 여겨지는 열 가지 논쟁을 다루고 있다. 영원히 ‘진리’인 줄 알았던 이론이 뒤집어질 때, 그것을 연구한 과학자는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우리에게는 그저 간단한 가설이 당시 과학자들은 그를 지키기 위해 끝없이 싸워야했다.

책에서는 교황 우르바누스 8세와 갈릴라이의 ‘불공평한 대결’, 윌리스와 홉스의 ‘원과 똑같은 면적의 정사각형 그리기’, 뉴턴과 라이프니트의 ‘거인들의 충돌’, 볼테르와 니덤의 ‘자연 발생설 논쟁’, 다윈과 월버포스의 ‘진화론을 둘러싼 전쟁’, 켈빈과 지질·생물학자의 ‘지구 나이에 관한 논쟁’ 등을 풀어내며 당시 일어난 분쟁들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