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제주아침(85) 꽃씨들 날아간 쪽으로하늘이 금방 팽팽해졌다하나님만이 아시는 저 불립문자들천사들이 다투어 읽는가보다다 읽은 꽃씨들은 땅으로 보내져애기메꽃, 민들레, 은방울꽃 그런 이름으로 태어나우리들 보고한 번쯤 읽으라고논두렁, 보리밭, 시냇

오승철   2014-04-20

시로 여는 제주아침(84)살아 있는 채로하루를 묻어버렸다땀의 뿌리는인부들의 등 뒤에서 싹트고밀감상자를 나르다허리를 펴면돌담 너머 세렉스, 경운기들이삶의 재고품으로 줄지어 있다나의 손은농부의 손으로 바뀌지 못하고바람은바람의 자식을 나뭇가지에만 매단다(하

오승철   2014-04-17

시로 여는 제주아침(83)겨울, 따라비오름-에 관한 기억하늘 기침에 방풍림도 주저앉은 폭설이다 갈까마귀 동양화 한 점으로 걸려 있고 살가운 무덤을 향한 길들이 사라진다그리움 식지 않은 겨울의 한복판에, 여기 있다 받어라 쌀점 치는 박수 되어 엎드린 바

오승철   2014-04-16

시로 여는 제주아침(82) 이승을 짊어지고 길 따라 가다보면산허리 펼쳐놓고 하늘 가린 곳이 있어땡볕에 그을린 삶을 풀어놓고 앉았더니큰 나무 작은 나무 서로서로 기대서서파아란 침묵의 꿈 치마폭에 감싸면새소리 바람 소리에 맑아지는 나의 넋풀잎만한 이유에도

오승철   2014-04-14

시로 여는 제주아침(81)오늘, 마당 가득 지등(紙燈)을 켭니다.목필화(木筆花) 봉오리 화르라니 피어나짙은 어둠 속 백등(白燈)으로 흔들립니다.바람이 분다고 합니다. 바람이 불었다고 합니다.바람이 불 것이라고 합니다.사월만 되면 불어대던 광풍(狂風),

오승철   2014-04-13

시로 여는 제주아침(80)결혼하고 35년,애들 결혼 시키고 손주까지 본 그 여자낼 모레 환갑인데 이제야 이상형을 만났다고“너무나 행복하고 든요” 라고 했다그 이상형씨산전수전 다 겪으며 고생만 하더니만가는 세월에도 어디서 힘이 솟는지참 조 커 라.-현용

오승철   2014-04-10

시로 여는 제주아침(79) 1950년대의 제주읍 칠성통 골목길 어느 판자집 뿌연 유리창에는 바람이 불적마다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누런 종이쪽지에‘그림을 가르쳐 드립니다’라고 써있었다지나가던 피난민 청년이 주저하다가 그 문, 삐거덕- 소리가 나는 홍종

오승철   2014-04-09

시로 여는 제주아침(78)지느러미 가시 같은 까칠한 손잔등이햇살을 뒤척이며 꾸득꾸득 말라간다함지 속 대여섯 뭉치 하얗게 핀 소금꽃갈매기 비린 문자도 졸고 있는 오후 세 시굵은 주름 행간마다 서린 미소 너른 여백때 늦은 국수 한 다발 입술주름 펴진다식용

오승철   2014-04-06

시로 여는 제주아침(77) 순한 가슴에도불 하나는 살아있다간밤에 고백한 말다시 내 뱉지 않으리신새벽황돔 한 마리끌고온다.뱃고동.-김대봉의 ‘일출봉’ 모두제주 땅에 일출봉이 없었다면 태양이 어디로 떠야할지 망설였을 법하다.일출봉은 고백의 성소이기도 한

오승철   2014-04-03

시로 여는 제주아침(76)말 잊은 지 이미 오래다그 덕분에졸참나무 숨소리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흐르는 물 앞에서손주 눈망울처럼 빛나는물의 눈빛도 볼 수 있게 되었다말을 잊었다는 거,그것은 제주 사려니 숲길에서 만난어린 노루의 신성한 눈빛처럼이 숲이 내

오승철   2014-04-02

시로 여는 제주아침(75)해 질 녘 모슬포 부둣가 한 귀퉁이아들이 갓 잡아온 멸치를할머니가 손질해 말리고 있다5천 원 주고 꽃멜 한 봉지 얻어 배낭에 넣었다몇 백 마리 멸치 온기가한기 어린 내 등을 따뜻이 덥혀준다갈매기들이 따라온다, 길고양이도 따라온

오승철   2014-03-31

시로 여는 제주아침(74)문득보고 싶어서전화했어요성산포 앞바다는 잘 있는지그때처럼수평선 위로당신하고걷고 싶었어요-정호승의 ‘문득’ 모두집에 성산포 앞바다를 통째로 들여놓고 사는 이승익 시인은 몇 년 전 ‘우성강 연가’란 시집을 냈다.왜 ‘우성강’일까?

오승철   2014-03-30

시로 여는 제주아침(73)서귀포 바다가 보이는 약천사 경내 불교 용품 판매점에하얀 앞니 두 개 난 어린 부처가 보행기를 타고 있다무구한 눈동자 들여다보는 초면의 중생을 향해 환하게 웃어 준다"부처님이 대웅전에 있는 게 아니라아기 얼굴이 부처님이네요."

오승철   2014-03-27

시로 여는 제주아침(72)나 할 말조차 앗기면 모슬포에 누우리라뭍으로 가지 않고 물길 따라 모슬포 고요가 되리슬픔이 손 뻗어 가리킨 곳모슬포 길들은 비명을 숨긴 커브여서집들은 파도 뒤에서 글썽인다네햇빛마저 희고 캄캄하여 해안은늙은 말의 등뼈보다 더 휘

오승철   2014-03-26

시로 여는 제주아침(71)1.겨울 넘긴 신천리그 바다가 나를 부른다시린 발시린 발자국들꽃들이 따라와 피고연둣빛 담요를 펴며알몸으로 눕는 바다.2.그 바다 긴 속눈썹에섬 하나 잠겨 있어혼자서 꾸던 꿈은옹이처럼 박혔는데밀물이 잠시 올라와석화 몇 송이 피우

오승철   2014-03-24

시로 여는 제주아침(70)봄비가 부슬거리는 날은제주도 바닷가에 가고 싶다성산포나 법환리 잔돌밭에 나가등 척척하도록 깅이 새끼들을 잡고 싶다한 멱서리 깅이 새끼들 잡아다초고추장에 버무려 회쳐먹고 싶다오늘처럼 봄비가 부슬거리는 날은마을 안 망다리 잠녀들도

오승철   2014-03-23

시로 여는 제주아침(69) 타버려싱게.아홉 살 적 풋대추 찾아 기어오르던안마당의 대추나무도 다 타버리고 어싱게.날만 새면 거르지 않던 동네 식개 영장 집 가마솥도 인젠 찾아볼 수 어싱게. 여름이면 갈중이 풋감 물들이고 겨울 한낮엔 푹푹 내려 쌓인 돌담

오승철   2014-03-20

시로 여는 제주아침(68)새벽밥 지으시나 하늘나라 내 어머니식구들 단잠 깰까 수문 살짝 여시고창가에 파 송송 써는 소리 봄비소리 참 좋다 뒷마당 애기 풀꽃들 살짝 얼굴 내밀어김 오른 양푼밥 가득 절로 입맛 도는 어머니 데불고 온 비토닥토닥 참 좋다-김

오승철   2014-03-19

시로 여는 제주아침(67)잘못 만났어도 함께 사는 법을아내에게서 배운다.내가 아내를 잘못 만난 시절은 가고아내가 나를 잘못 만난 시절만이 다가서고 있는데용서하는 법, 용서하는 법을 다시아내에게서 배운다.-정인수의 ‘아내를 위한 단장(斷章)·4’ 모두이

오승철   2014-03-17

시로 여는 제주아침(66)겨우내 윗목에 누워 뒤척이던 고향바다봄은 그 머리맡으로 양은대야를 끌어당기며어젯밤 잠 설친 돌섬 젖은 이마를 만지고 있다.푸근히 뜸잠결에 안개꽃, 봄눈이 와서포물선 물마루 끝이 하늘자락에 허물어지면아득히 옥돔어장엔 등을 켜는

오승철   2014-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