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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抽象)의 극단은 블랙홀인가
양경식  |  제주대 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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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24  15: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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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눈은 시신경을 통해 인간을 혹은 사물을 포착하고 뇌로 보내 분석 단계를 거친 후 세상을 인식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는 것은 우리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식작용을 하는 뇌가 본다는 것이 옳다. 우리 눈으로 바라보는 외계 세상은 <차이>들로 꽉 차 있다. 인종들의 차이, 각기 다른 외형 등의 차이, 식물군들의 각기 다른 형태와 생장 주기의 차이 등등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이처럼 각 개별적인 차이들이 모여 생성된다. 너와 나의 다름, 사물과 사물의 다름, 이러한 차이가 세상을 탄생시킨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와 같이 차이를 가진 <개별자>들로 이루어진 세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플라톤의 이원론적 사상에 의하면 본질이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본질은 이 세상 너머 이데아의 세계에나 존재한다. 이데아계에서 인간이라는 개념은 하나뿐이며 <현상계>에서는 이를 복제한 각양각색의 인종들로 꽉 채워져 있다. 현실에 있는 모든 것들은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본질을 베낀 복사본이라고 할 수 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구성원의 하나로서 자존심이 무척 상하지만 현상계의 인간들은 이데아계에 있는 인간의 복사본이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데아계의 <보편자>들을 베낀 개별자들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듯 이데아계에서는 서로 구별되는 각각의 인간이라는 차이는 생성되지 않으며 동일성인 본질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인식하며 사는 세상은 실재인 것 같으나 이데아의 본질을 모방한 허상에 지나지 않으며 현실에서의 모든 것은 변하고 소멸되며 유한하다.

 

   

피에트 몬드리안 /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 1930/ 취리히 쿤스트 하우스

모방을 제1원리로 삼았던 재현적인 미술에서는 차이의 세계가 뚜렷하게 존재했다. 충실하게 재현된 성당의 재질감, 이카로스가 추락하는 장면 등 서사구조가 명확하며 그려진 화면속의 대상들은 서로 개별자로 존재하고 구별됐다. 각각의 대상 사물들은 서로 구별되는 차이를 통해 세계를 생성시켰다. 이러한 개별성들이 밀로의 비너스나 라파엘로 산치오의 아테네 대학당등을 비롯한 수많은 명작들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반면 현대미술의 경우는 이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피에트 몬드리안은 수직선과 수평선 등 가장 본질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펼쳐지는 사람, 건물, 나무 등에서 가장 본질적인 요소들을 추출한 결과 수직선, 수평선만이 남게 되었고 이를 세상의 본질로 인식하여 수많은 선긋기를 통해 보이는 대상들의 차이를 줄여 나갔다. 러시아의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더 나아가 차이의 극단까지 몰고 갔다. 그는 하얀 바탕에 검은 사각형 하나만을 그려 놓고 세계를 인식했으며 그의 검은 사각형은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빨아들여 무()로 환원시키는 블랙홀처럼 현실의 세상을 흡수해 버렸고 세상은 차이가 없는 빅뱅 이전의 동일성으로 돌아가 버렸다.

 

   

카지미르 말레비치 / 하얀 바탕 위의 검정사각형 / 1915 /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관

몬드리안이나 말레비치에 이르면 예술은 향유라기보다는 철학적 사유라는 것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개별적이고 가변적인 것들 속에서 보편적이고 불변적인 것들을 추출하는 행위, 이런 면에서 예술창작과 이를 통한 인식은 고도의 사유를 요구하는 정신적인 영역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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