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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4일의 역사적 의미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백승주  |  C&C 국토개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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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19  16: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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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론들은 올해‘214의 의미를 연인끼리 초콜릿과 선물을 주고받는‘밸런렌이타인 데이를 소개하면서 순국110주년을 맞는 안중근 의사가사형선고가 된 날이라는 투의 가십(gossip)기사로 다루었다. 물론 하얼빈 역에서 대한제국과 을사늑약을 맺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의거일은 1026일이고 서거일은 326일이다.

안중근은 체포되어 사형 집행을 기다리며 옥중에서 두 종류의 저술을 구상했다. 그 중 하나가 동양평화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담고 있는동양평화론이다. 그 주된 골자는동양평화를 유지하려면 한국과 청국, 일본 등 삼국이 일치단결해야 하며, 이들 삼국은 각기 독립을 유지한 가운데 단결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 동양 평화를 유지하려면 이들 국가들이 일치단결하여 서양의 침략, 즉 제국주의 침탈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형집행 일자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동양평화론의 완성을 위해 사형집행 일자를 한 달 정도 연기해 줄 것을 일제에 요구하게 되었고, 이에 일제가 승낙을 해옴에 따라 이를 믿고동양평화론저술에 착수했다. 그러나 일제는 약속과 달리 1910326일에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저술기간은 10여 일 정도에 불과했다. 일제 당국의 약속만을 믿고 공소(소송제기)를 포기함으로써동양평화론은 미완성인 채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현재 서울 남산 안중근 기념관에 보관된 체계에 따르면, ‘동양평화론1() 2전감(前鑑) 3현상(現狀) 4복선(伏線) 5문답(問答)으로 구성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집필된 것은 서()2장의 전감(前鑑) 정도이다. 전감도 구체적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남산안중근 기념관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동양평화론의 내용은 그 서론에 해당되는 극히 일부분인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완성본을 볼 수 없기는 하지만, 1909113일부터 1910326일까지 약 5개월에 걸쳐 치러진 옥중신문 과정에서 일본 검찰관과 벌어진 논쟁에서 안중근은 자신의 양평화론의 전반적인 내용의 면모나 흐름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다음과 같은 반박논리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째,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여 1910년 합일합병의 근간을 마련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 대한제국의 고종황제 폐위 등으로 일제의 침략정책 추진에 대하여 조선인이 분개하고 있다. 둘째, 일본의 대한제국병합야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세계열강들이 좌시하고 있는 이유를 알고 있으며, 이토 히로부미가 주동이 되어 대한제국을 일본의 속국으로 병탄하려 하고 있다.

셋째,1905년 을사늑약은 자유롭게 체결된 것이 아니라 일본군대가 고종황제를 협박한 가운데 강제로 체결한 것과 다르지 않다. 넷째, 대한제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파괴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은 일본제국을 각성시키고 대한제국의 침략행위를 중지시키고자 한 것과 다르지 않다.

다섯째,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자 하는 자가 있는 데도 수수방관한다는 것은 더 큰 죄이며 이는 결코 교리를 위반한 것이 아니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침략하는 행위야말로 인도주의에 반한행위와 같다.“

지금 우리나라 내우외한의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바라건대 젊은이들이여! 가능하시면 연안과 함께 안중근 의사기념관 찾아 역사적 의미 되새기데이트해 보세요하고 강추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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