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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추위를 딛고 피는 한란이 향기롭다
김구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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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02  10:4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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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텃밭 앙상했던 모과나무에 연녹색의 새순과 함께 연분홍 꽃이 피었다.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실바람에 살랑거리며 떨어지는 벚꽃의 향연, 계절을 잊지 않은 자연은 생기를 머금고 있는데 인간의 삶은 어둠에 갇힌 채 멈춰 버렸다. 갑갑한 일상이 계속되는 요즘, 엊그제 보내온 딸의 메시지에 담긴 소중함이란 말을 생각나게 한다. ‘코로나 땜에 어디 놀러 가지 못해도, 그만큼 가족들이 돈독하게 이런저런 이야기 할 수 있음에 감사한 요즘입니다.’라는 글이다.

 코로나19는 모든 것을 어둠으로 덮어 버렸다. 지구의 일부 지역에서 시작된 바이러스는 세계 모든 곳을 집어삼키고 있다. 안전한 곳은 없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여겨졌던 인간이 전자 현미경으로 겨우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미생물에 의해 점령을 당하고 말았다. 하찮다고 생각했던 미세한 존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응하느라 국력을 모두 쏟고 있지만 별다른 승리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전장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바이러스와 싸움을 하는 의료진들과 환자들, 지역 사람들, 관련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이 시대의 영웅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고 나면 매스컴은 확진과 사망이라는 패전의 소식을 전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반드시 가까운 시일 내에 치료제를 찾아낸다고 자신하는 현대 과학기술을 믿지만, 결과는 이미 전투에서 많은 것을 잃어버린 다음의 일들이다.

 코로나19의 등장은 이미 예견된 자연의 분노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우리 인간들은 너무도 많은 부와 권력을 맹종하는 과정에서 물질적이며 탐욕적인 속물근성으로 전락해버린 결과,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자연의 경고음이 아닐까.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은 가장 먼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솔직한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지구상에서 주인 노릇을 해 온 인간이 고백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해답이다.

 327일 저녁, 인적 없이 텅 빈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 여든을 훌쩍 넘긴 프란치스코 교황이 천천히 가로질러 특별 제단 위로 올라섰다. 교황은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드넓고 휑한 광장을 바라보며 저희를 돌풍의 회오리 속에 버려두지 말아달라, “우리는 모두가 같은 배를 타고 있고 연약하고 길을 잃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준비한 글을 읽어내려갔다. 평소 수만 명의 신자와 방문객이 모이는 곳인데 그날은 교황 혼자였다.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교황이 전 세계인들이 시청하는 티브이 앞에서 인간들의 탐욕에 대한 고백과 함께 용서를 구하며, 죄악에서 인류를 구해내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진솔함의 무게에 짓눌려 내리는 얼굴에서 고뇌를 보았다. 그분의 발걸음은 너무도 무거웠다. 인류 구원을 위한 애절함의 기도는 마치 빈 광장에 애처롭게 흐르는 빗물이었다.

 코로나19는 인류가 체험하지 못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예방주사라는 것을 인지하는 기회인 것만은 분명하다. 모진 추위를 딛고 피는 한란이 향기로운 꽃을 피우듯, 이 사태가 진정된 다음은 무엇보다도 순수한 관계성을 회복하여 서로 간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두려움의 공포에서 벗어나 서로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나누고 즐거운 무엇인가를 함께하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를 반추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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