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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신고서’
신철민  |  서귀포시 대정읍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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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16  16: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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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같은 한 장의 신고서, 모두 같은 이름의 신고서지만, 그 신고서에서 느껴지는 마음과 무게는 모두 다르다. 그리고 요즘, 그 어떤 신고서보다 무거운 신고서와 마주하고 있다.

지난 1월 1일, 우리 도에서 ‘제주4.3사건 희생자 및 유족 추가신고’를 접수하기 시작한 이래로, 수많은 유족들이 추가신고를 위해 읍사무소를 방문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민원인들 중 대부분이 이미 유족으로 등록되어 있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거동도 자유롭지 않고, 읍사무소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쉽지 않은 길일텐데 어떻게 그리 많은 어르신들이 읍사무소로 향하는 것일까?

지난 세월 말로 다 할 수 없는 억울함과 고통을 감추고 견디어온 그 설움이 어르신들을 읍사무소로 이끌고 있다. 자신의 자식, 손주들은 그 고통 속에 살게 하지 않기 위해 제주4.3유족으로 당당히 혜택을 받으며 살게하기 위해 어르신들은 읍사무소를 찾고 있다. 어르신들과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지난 과거의 가슴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당시 상황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하며 언성을 높이기도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또한 지난날 연좌제로 대물림되던 고통에 대해 가슴 아파하는 어르신들을 마주하게 된다. 제주4.3사건의 피해자로, 유족으로 인정받는 일이, 그리고 자신의 아들, 딸, 손주들이 유족으로 등록되는 일이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는다.

공직생활을 하며 다양한 신고, 신청서류를 받지만, 이번 제주4.3사건 추가신고 서류만큼 무거운 신고서는 없었다. 힘든 몸을 이끌고 자리에 앉아 떨리는 손으로 자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은 신고서, 지난 세월에 대한 가늠할 수 없는 한(恨)과 설움의 무게가 느껴지는 신고서를 오늘도 받는다. 조금 더 그들의 입장이 되어 공감하며 상담하고, 어르신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수 있기를 오늘도 다짐한다. 이런 다짐이 실제로 도움이 되어 그들의 마음에 한이 조금이나마 풀릴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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