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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나시냐?”
김구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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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5.05  16:5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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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 사는 소꿉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릴 적 위아래 집에서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닌 친구라서 목소리만 들어도 구수한 된장 냄새와 같은 애정이 깃든다. 얼굴이 깡마르고 홀쭉한 친구의 모습이 안쓰러워 어머니는 항상 반겨주었고, 식구같이 대해 주셨다.

 삶은 민들레 씨앗과 같은 것인가. 바람에 흩어져 날려 떨어지는 곳이 삶이 자리가 되듯, 친구는 섬을 떠나는 긴 여정 속에 부산에 정착했다.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가정을 꾸리는 삶의 울타리 안에서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외딴곳에 뿌리를 내린 민들레의 삶처럼. 그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일생을 바다에서 지내다가 자신이 태어난 강가로 돌아오는 연어와 같이 마음속의 고향을 찾고 있는지 모르겠다.

 친구는 어릴 적 고사리를 좋아했는지, 이만때만 되면 고사리 찾는 전화를 한다. 고향을 떠난 지 사십 년이 훌쩍 넘었으면 육지 사람이 될 만도 한데, 고향에 몸을 둔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심정이다. 그리움이 서린 친구의 음성에 몇 년 전부터 삶은 고사리를 냉동해서 보내고 있다. 연어가 강물을 따라 태어난 곳을 찾아가듯 친구도 고사리를 통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믿음에서다.

 5월의 산등성이는 푸르다. 연녹색의 잎사귀들이 한들거리는 모습은 가을 단풍의 모습과 다른 느낌을 준다. 단풍이 저녁노을이라면 연푸른 이파리들은 이른 새벽과도 같이 순수함이다. 생명의 탄생이며 새로움의 시작이라는 희망을 준다. 산과 숲은 축제의 기쁨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거룩한 신비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과 같은 포근함이 깃든 계절이다.

 부모님의 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풋고사리를 좋아했던 그분들을 기억하면서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른다. 올해는 윤달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마른 가뭄 때문인지 예년과 다르게 고사리가 드물다. 움트기 시작하는 마른 억새 틈 사이를 헤쳐보기도 하지만 쉽게 보여주기를 거부한다. 그러다 눈에 비친 고사리는 작고 도톰한 얼굴을 숙이고 있다.

 가히 속세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여인의 모습이다. 하얗게 분칠한 얼굴에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도시를 활보하는 여인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녀는 영롱한 새벽이슬로 화장을 하는가 보다. 촉촉이 물기를 머금은 얼굴에는 하얀 이슬방울이 맺혀있다. 보일 듯 말 듯 보송보송한 털이 밉기는커녕 매혹적이다. 수더분한 촌색시를 닮은 그녀의 얼굴은 가까이서도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소박한 민낯이다.

 고향의 모습이다. 소박하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풋내가 고사리를 통해 다가오는 것이다. 강물을 떠나 거센 파도가 일렁이는 대양에 몸을 맡긴 연어처럼 삶의 질곡에서 몸부림을 쳐야 하는 고해의 바다와 같은 세상에서 기댈 곳은 고향이었다.

 고향은 남은 자들의 자리만이 아니라 떠난 이들의 마음속에도 살아있는 곳인가 보다. 마음은 어느덧 소싯적 아름다웠던 시절과 바람 소리에 묻어나는 기억 한 줌은 심장의 박동 소리와 함께 고향으로 가는 열차에 탑승한다. 어머니의 따스한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곳, 그리운 아버지가 가슴으로 뿜어 올리시던 연초 냄새가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곳. 친구는 그곳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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