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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기우'
오승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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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11  17:2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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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당신이 아파지면
우리가 맨발로 걷던
비자림을 생각하겠어요

제주도 보리밭에 깜짝 놀란
당신이 느닷없이 사색이 되어
수풀 속에 들어가 엉덩이를 내리면,
나는 그 길섶 지키고 서서
산지기 같은 얼굴로
오가는 사람들을 노려봤지요
비자림이 당신 냄샐 감춰주는 동안
나는 당신이, 마음보다 더 깊은
몸속의 어둠 몸속의 늪 몸속의 내실(內室)에
날 불러들여 세워 두었다 생각했지요
당신 속에는, 맨발로 함께 걸어도
나 혼자만 들어가 본 곳이 있지요
나 혼자선 나올 수 없는 곳이 있지요
먼 훗날 당신이 아파지면
웃다가는 눈물 나던 비자림을 찾겠어요


-이영광의 ‘기우’ 전문


최근 ‘나무는 간다’는 시집을 낸 시인이 언제 비자림을 다녀 갔나보다.
수풀 속에 들어가 엉덩이를 내린 여자를 산지기처럼 지키는 모습은 웃다가 눈물이 나는 사랑인 것이다.
실제 ‘아파지면’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기우임을 시인은 안다.
그러나, 아무리 기우라 해도 맹세가 이쯤은 되어야 사랑이지 싶다
때때로 삶이, 사랑이 힘들거든 비자림으로 가라. 거기 가서 누군가의 산지기가 되어 보라.
비자림은 사랑의 상처도 치유하고 감싸주는 품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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