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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의 ‘살구나무 여인숙’
오승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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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15  17: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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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 여인숙'


마당에는 살구나무가 한 주 서 있었다
일층은 주인이 살고

그 옆에는 바다 소리가 살았다
아주 작은 방들이 여럿
하나씩 내놓은 窓엔
살구나무에 놀러 온 하늘이 살았다
형광등에서는 쉬라쉬라 소리가 났다
가슴 복잡한 낙서들이 파르르 떨었다
가끔 옆방에서는 대통령으로 덮은
짜장면 그릇이 나와 있었다
감색 목도리를 한 새가 하나 자주 왔으나
어느 날 주인집 고양이가
총총히 물고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살구나무엔 새의 자리가 하나 비었으나
그냥 맑았다 나는 나왔으나 그 집은
그냥 맑았다


-장석남의 ‘살구나무 여인숙’ 전문

시인은 이 시를 ‘제주에서 달포 남짓 살 때’ 썼음을 부제로 밝히고 있다.
살구나무가 여인숙을 차렸으니, 그 나무 일층에 주인이 살고 그 옆에 바다가 살고, 가끔 하늘도, 새들도 놀러오곤 하는 것이다.
‘살구나무 여인숙’은 이 세상이란 ‘여인숙’에 다름 아니다.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면 잠시 파문이 일다가 잠잠해지듯, 우리가 여인숙을 나오든, 세상을 나오든 그 자리는 아무 변함없이 그냥 맑기만 할 것이다. 세상의 집착은 버리자. 형광등이
‘쉬라쉬라’ 할 때 가끔은 달포 남짓 쉬다가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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