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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남의 '겨울 보리밭에서'
오승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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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05  19: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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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여는 제주아침(60)


이호 지나 사수동 가는 길
돌담너머 바다가 새하얀 모가지로 기웃거리고
더러 성긴 눈발이
보리밭에 와서 눕는다.
아직 다 여물지 않은 당신과 나의 눈물
이 잡듯이 꾹꾹 누를 때마다
한사코 파릇파릇 터져 나오는데
한사코 소복소복 무더기로 헤집고 나오는데
갈 테면 가라
나는 여기
당신의 환한 웃음 붙잡고
보리밭만 꼬옥 꼭 밟는 것도 좋겠다.

-김순남의 ‘겨울 보리밭에서’ 일부

‘들꽃’의 시인 김순남.

그녀가 여객선을 타고 제주로 흘러들어온 것은 1970년대 초반으로 기억된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제주 땅. 그녀에게 있어서 시는 신앙이요, 가족이요, 살아가야 할 이유였다. 그야말로 그녀는 삶 그 자체가 들꽃이다.
‘당신과 나는’ ‘다 여물지 않은’ 사이다.

보리밭 밟듯 그 눈물을 이 잡듯이 꾹꾹 눌러보지만 한사코 터져 나오는 이 푸른 그리움, 이 허기를 어쩔 도리가 없다. 사수동 가는 길에는 새하얀 파도, 푸른 보리밭, 검붉은 돌담의 그 원풍경만 남았다. 시인아, 긴 겨울 그리움 붙잡고 꼭꼭 밟던 보리밭을 박차고 이제 종달새 소리 높이 쏘아 올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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