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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의 좋은 날시로 여는 제주아침174
나기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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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01  15: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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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을 가는데
한 아이가 인사를 했다

내가 오래 전

선생을 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조금 더 가는데
또 한 아이가 인사를 했다

내가 지금도
시를 쓰는 사람이란 걸
어떻게 알았을까?

 
좋은 날이다
-나태주, ‘좋은 날’ 전문


 

나태주 시인이 서른 번째가 넘는 시집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2014, 푸른길)를 보내 주셨는데, 이 시가 있다. 언젠가 그의 시 ‘풀꽃’(시집 『쪼금은 보랏빛으로 물들 때』, 2005.)이 벽에 크게 걸려 있는 제주학생문화원에서의 강연이 끝나고 추사적거지로 가면서 옆 자리의 선생에게 당신의 상처를 물으니, 자기는 여자에게 버림받은 거라고. 그렇다. 그의 시는 데뷔작 ‘대숲 아래서’(1971)부터 그 상처에서 나오고 있다.

고교 때, 길 건너편 그 여고의 국어 선생을 하며 시를 쓰며 살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었는데, 생각이 씨가 되어 강산이 세 번 변하도록 거기서 호호, 하하, 흐흐, 시집도 몇 권 냈으니 복 받은 것 아닌가. 몇 년 남기고 밖으로 나오니 좋긴 하나, 어딜 가도 모르는 사람 천지. 가끔 인사하는 졸업생을 만나는 순간 비로소 존재감을 느낀다. 사람들은 내가 선생이었고, 시도  쓴다는 걸 알 턱이 없다. 지금도 거길 가면 녹나무 잎이 반짝이고, 큰 성모상 아래 백합은 빛나겠지. 힘겨운 학생과 선생들을 위무하는 돈보스코 성인의 손길이 있겠지. 신성神性이 흐르겠지.

오늘 시내로 오는 버스에서 반갑게 인사하는 누구를 만났으니 오늘은 나도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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