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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의 봄비시로 여는 제주아침177
나기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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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06  18: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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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저 세상으로 떠난 여자가, 23년간
내 곁에 살면서 지긋지긋 징글맞다고 말했던 여
자가 내 창 밖의 감나무 아래까지 내려와 창문을

두들기는 이유는 뭘까 아마 나로부터 한마디 꼭
듣고 싶어서일 게다
-미안하다
-김성수, ‘봄비’ 전문


‘우중의 여인’이란 노래가 생각난다. ‘장대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헤치며 나의 창문을 두드리며 흐느끼는 여인아. 만나지 말자고 맹세한 말 잊었는가. 그대로 울지 말고 돌아 가다오. 그대로 돌아 가다오. 깨무는 그 입술을 보이지를 말고서.’

그런데 여기서는 여인이 아니고 봄비다. 아니, 봄비가 되어 온 여인이다. 그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지, 아니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걸로 생각하기로 했는지. 혹 바다 너머 먼 다른 공간은 아닐까. 아뭏든 둘은 잘 살든 못 살든 이십 년이 넘게 같이 살았다. 『풍속의 역사』(에두아르트 폭스, 까치)에서, 부부는 생식을 하고, 사랑은 정부와 했듯, 그들에게 애인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봄에 아직 잎도 드문드문한 감나무에 튕겨 비는 유리창을 친다. 그녀는 내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를 듣고 싶었는데 나는 그런 말을 전혀 안 했고, 그녀는 갔다. 이제 뒤늦게 나는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녀를, 아니, 봄비를 보며 그의 안으로 삭힌 절절한 시들을 보면 훌륭한 예술은 슬픔의 땅에서 피어난 꽃이란 말이 생각난다. 그가 이젠 좀 덜 외로워져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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