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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의 수묵담채시로 여는 제주아침179
나기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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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09  18:4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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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랑고랑 콧소리 내며 잠든
늙은 어미 손톱 밑이 검다

볕드는 현관에 바람 벗 삼아 앉아
굽은 등 수십 번 펴고 두드리며
고구마줄기를 벗기다 들었을
풀빛이 검다

잠이 든 어미 곁에 놓인
검은 비닐봉지 셋
희었다가 푸르다가 검어지던
가슴 아린 줄기들이 얼기설기
소복이 들어 있다

진종일 어미는

고구마 줄기를 익은 된장에 무쳐내던
가을 밥상을 그렸을 것이다

보름달밤을 하얗게 도려낸
가을 달빛이
고구마 줄기처럼 휘었던
어미의 등을 주무르고 간다
-김영미, ‘수묵담채’ 전문


 
어제 아침, 아내와 집에서 멀지 않은 신촌 텃밭에 가서 한 뿌리에 달린 고구마를 조금 캐 왔다. 내 팔뚝만한 것들이 여럿, 난생 처음의 수확이다. 지난여름 오일장에 가서 줄기 몇 천원 어치를 사서 두 이랑에 심었는데, 그 잎이 무성하여 밭담을 넘었다. 집에 가져와 쪄 먹으니 그 맛이 그야말로 잘 그린 수묵담채화水墨淡彩畵 보는 맛이다. 먹색을 기본으로 하여 여러 채색을 보조적으로 쓴 이 그림.

이 시는 고구마 줄기처럼 등이 휘도록 고구마 밭일을 하다 집에 와 잠든 여인의 모습을 그렸는데, 그걸 한 폭의 수묵담채화로 본 건지, 그런 수묵담채화를 보고 쓴 건지는 모르겠다. 마치 김홍도의 풍속화처럼 그 어미의 모습이 다르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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