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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관의 풀벌레 울음송頌
나기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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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13  17: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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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소리를 들어 보아라.
어둠 속에서 저들이 어떻게 괴로워하고
어둠 속에서 저들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는가를 들어 보아라.
허공을 버리고 길을 버리고
그림자를 버리고
그리고 마지막 저들이 어떻게 막막한
밤이 되는가를 들어 보아라.
살과 살을 다 빼앗기며 밤 새워 우는 저 아픈 채찍소리 앞에선
아, 모든 게 맘에 들지 않아라.
그리고 무엇인가.
저들의 아픔을 따라 울지 못하는
나는 무엇인가.
풀벌레 소리 하나에도 내 마음은
천걸래, 만갈래로 흩어지고
그대의 가슴에 닿으면
달콤한 毒독으로 변해 버리는 내 입술이
한없이 부끄럽다, 부끄럽다, 그대여.
-이준관, ‘풀벌레 울음頌송’ 전문


올 여름엔 왠지 매미 소리를 못 들은 것 같다. 비가 많이 와서일까. 매미는 십 년 안팎을 애벌레로 보내다 성충으로 있는 기간은 고작 한 달이라 한다. 그렇게 오랜 기간을 기다려 매미는 그렇게 온몸으로 우는 것이다. 매미는 수컷만 운다는데 종족을 이으려 암컷을 부르는 그 유혹의 몸짓를 멈췄다는 게 심상치 않다. 한낮의 세레나데가 좀 어울리진 않지만.  여름, 매미가 울 때 나도 그 소리 속에서 많은 상념을 가졌었다.
화자는 풀벌레들의 울음에서, 그들이 허공과 길과 그림자를 버리고 어떻게 죽음에 이르는지를 느껴보라고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내려놓지 못하고 허덕이는 우리에게 저 자연의 미물에게서 배우라고 말한다.

‘저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내가 왜 저기 있지 않고 여기 있는지. 그 때 있지 않고 이 때 있는지’. 파스칼의『팡세』, 이 구절을 생각한다. 어제 밤에는 이렇게 사라질 생각에 어두운 방안 잠자리에 들며 무척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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