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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열, ‘쉰’ 전문시로 여는 제주아침187
나기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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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23  1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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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갈 수 없을 줄 알았다
설운 서른에 바라본 쉰은
너무도 아득하여 누군가

손잡아주지 않으면 못 닿을 줄 알았다
비틀거리며 마흔까지 왔을 때도
쉰은 저만큼 멀었다

술은 여전하였지만
말은 부질없고 괜히 언성만 높았다
술에 잠긴 말은 실종되고
더러는 익사하여 부표처럼 떠다녔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몇몇 벗들은 술병과 씨름하다
그만 샅바를 놓고 말았다
팽개치듯 처자식 앞질러 간 벗을 생각하다
은근슬쩍 내가 쓰러드린 술병을 헤아렸고
휴지처럼 구겨진 카드영수증을 아내 몰래 버리면서
다가오는 건강검진 날짜를 손꼽는다
-김수열, ‘쉰’ 전문


이 시가 실린 그의 네 번 째 시집 『생각을 훔치다』가 나온 게 2009년이니까 그의 나이도 이젠 오십대 중반이다. ‘80년대 초 그 살벌하던 때, 20대 초의 열혈 청년 그를 처음 만났다. 난 30쯤의 화이트 칼라였고.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엔 조금 거리가 있었다. 그 후 우리는 서서히 많이 함께해 갔다. 그간 그가 쓰러뜨린 술병도 참 많겠다. 그의 시 ’술에 취한 가오리가 내게 말하기를‘이란 시는 우리의 40대 때 서문시장 어느 식당에서, 내가 술 먹는 날을 달력에 표시한다고 하니까 그가 쓴 시이다. 그가 그 어두운 밤에 많은 이들과 함께 쓰러뜨린 그 술병들에 이어서 지금 그가 있고, 쓰러뜨린 그 술병만큼 이 섬에 빛이 쌓였다. 그러는 사이, 그 또래 몇몇은 먼저 가기도 했다. 이야성은 훨씬 먼저 가고, 정공철도 몇 해 전 갔다.
이 시집에 이르러 그의 시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 시와 삶이 잘 어우러져 향그러운 풍경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시집에 제4회 오장환문학상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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