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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고유의 지역 정서와 감성 지켜야”
임연희 기자  |  yhl@jeju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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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21  18:5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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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추’의 김태용 감독이 가을이 무르익은 제주를 찾았다.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 상영을 위해서다.
 
‘청춘의 십자로’는 제11회 제주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돼 여러 언론 매체와 관객들에서 찬사를 받았다.
 
이 영화의 필름 복원 과정부터 각색, 연출을 맡은 김태용 감독은 1934년 영화 ‘청춘의 십자로’를 통해 현시대 관객들에게 무성영화의 매력을 선사했다.  
 
개막작 상영을 하루 앞두고 제주 시내의 한 카페에서 김태용 감독이 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와 함께 문화예술과 제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영화만 2,3백번 돌려봤다”
 
 
김태일
‘청춘의 십자로’는 어떤 영화인가
 
김태용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는 1934년 영화다. 공식 기록으로 보면 1935년부터 발성영화가 시작됐으니, 이 영화는 한국 무성영화의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이면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무성 영화다.
 
김태일 
1930년대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를 다시 무대에 올린 계기는?
 
김태용
처음에는 한국 최초 영화 ‘아리랑’의 필름이 복원된 줄 알았다.(웃음)
2007년에 단성사를 운영하던 사장님의 손자가 창고에서 필름캔을 발견했는데, 필름캔에 ‘아리랑’이라고 쓰여 있었다.
1926년 나운규 감독의 작품 ‘아리랑’은 큰 흥행과 민족성도 가진 영화지만, 필름이 소실돼 그 영화 내용을 아무도 모르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질산염 필름은 공기와 마찰이 있을수록 부식되기 때문에 복원이 쉽지 않다. 일본 복원팀과 한국영상자료원의 1년간의 노력 끝에 2008년 복원에 성공했다.
그런데 복원을 하고 보니 감독이자 주연을 맡았던 나운규의 얼굴이 아니었다. (웃음) 무슨 영화인지 알기 위해 당시 일간지를 다 봤고, 이 영화가 ‘청춘의 십자로’라는 걸 알게 됐다.
 
김태일
영화의 각본을 이번에 김 감독이 다시 썼다고 들었다. 그 과정은 어땠나.
 
김태용
영화를 200~300번 정도 돌려봤다. 
복원된 ‘청춘의 십자로’를 처음 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 무성영화를 본 기회였다. 국내에 남아있는 무성영화가 없어 찰리채플린의 영화와 같이 해외 영화를 통해 무성영화를 접했고 배웠기 때문이다.
특별한 순간이긴 했지만 처음 봤을때는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웃음)
발견된 필름 여덟 개 중 1개는 부식으로 복원이 어려워 내용 중간에 없는 상태였고, 몇 줄의 영화 줄거리만 기사를 통해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과거의 영화 상영 방법을 재현해 보자고 제안했다.
연극배우를 오래한 조희봉 배우와 함께 영화를 수 차례 다시 보며 각본을 만들어갔다.
무성영화여서 대사를 배우의 입모양과 분위기를 통해 내용을 얼추 맞춰가는 작업을 거쳤다.
배우가 ‘오아어아’ 하는 입모양을 ‘오빠’로 읽고 인물 관계를 알아가는 방식이었다.
 
 
   
 
 
“변사가 배우보다 잘 나가던 시대”
 
김태일
여러 노력 끝에 80여 년 전 무성영화를 변사 중심의 과거 상영 방식으로 재현해 지금의 관객들이 만날 수 있게 됐다.   
 
김태용
1930년대 무성영화 관람은 스크린을 통해 보는 것보다 무대 위에서 변사를 통해 보는 게 익숙한 시대였다.
당시 변사는 무대배우이면서 극작가, 감독 모두를 하는 종합예술인이다. 배우보다 변사가 더 유명했다고 보면 된다. 관객들은 영화 출연 배우가 누구인지보다 변사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영화를 봤다.
무대에서는 영화 상연 외에도 극단 팀이 마술, 공연, 마임 들을 보여주곤 했었다. 그러한 방식을 이번에 그대로 도입했다. 
 
 
 
“일제시대 극장 남아있어 놀라워”
 
김태일
영화와 극장은 땔 수 없는 관계다.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인 극장에 대해서도 말해보자.
 
김태용
영화에 대한 기억은 극장에 대한 기억과 완전히 붙어있다.
지금은 집, 컴퓨터, 핸드폰으로도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영화와 극장이 점점 분리돼 가고 있다.
그래서 일부러 극장을 찾는 관객은 극장이 주는 향수, 정취를 더 요구하게 되는 것 같다.
극장에서 사람들이 모여 스크린 1개를 함께 본다는 것은 누군가와 공유하는 제의(祭儀)이기도 하다. 모종의 연대의식도 관객들은 느낀다. 단순한 영화 감상은 영화관 바깥도 가능하지만 ‘체험’은 극장에서만 가능하다.
 
 
김태일
나는 현대극장이 원도심 재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50대 이상 제주도민들은 현대극장에서 영화 ‘벤허’, ‘십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영화를 관람했다. 비록 건물이 낡고 오래됐지만 가치가 있다.
 
김태용
일제시대에 운용됐던 극장이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김태일
현대극장은 1943년 가설극장으로 만들어졌다. 일본인이 건설했지만 이후 오현고등학교를 설립한 황순하 이사가 운영했다.
제주의 영화와 연극 시설로 운영됐고, 해방 후 1950년까지는 정치 집회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김태용
현대극장이 무성영화 ‘아리랑’을 1957년인가 1958년에 상영했다. 제주도 현대극장이 국내에서는 마지막으로 무성영화를 상영하고 폐업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김태일
건축가로써 영화는 그 안에 도시와 건축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바라보는 영화와 건축의 이야기에 대해 듣고 싶다. 
 
김태용 
영화 ‘청춘의 십자로’에서는 시골집도 볼 수 있고, 잘 살았던 경성의 집과 서울역도 볼 수 있다.  
카페도 하나 나오는데 지금의 카페 인테리어보다 훌륭하다. ‘근대 모던걸, 모던보이가 모이는 공간은 이렇구나’하고 보게 된다.
그래서 영화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이 있는 공간을 찍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는 특별한 감성이 있어”
 
김태일 
김태용 감독은 제주와 인연이 깊다. 제주를 10년간 왕래했고, 제주에서 단편 영화를 찍기도 했다. 제주를 어떻게 생각하나.
 
김태용
‘제주’하면 문화예술의 섬이라고 딱 떠올랐으면 좋겠다.
영국 런던에 가면 두 가지가 있다. 외부 사람들이 즐길만한 볼거리가 있다는 점, 이를 지킬 만큼 지역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보여주기 식이 아닌 ‘진짜 예술을 사랑하는 섬’이 되면 관광객들은 그 지역의 정서까지 받아들인다. 개인적 바람이면서도 제주는 가능할 것 이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제주 사람들은 해녀 분들을 비롯해 엄청난 감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예술적 감수성에는 제주가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단편적인 문화관광 상품으로의 예술이 아니라, 품격있는 문화예술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런데 카지노, 개발 논리와 같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제주의 정서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아직은 과도기적인 시점이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본다.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문화라는 가치를 어떻게 제주의 색깔로 씌워나갈지 고민이 필요하다.
 
 
 
“차기작은 제주 판타지 영화”
 
김태일
현재 구상하고 있는 영화가 제주에 대한 이야기라고 들었다.
 
김태용 
구체적이진 않고 지금도 조사하면서 공부중이다.
내가보는 제주는 섬 자체가 정서로 꽉차있다. 설화나 신화가 아직도 생활속에서 움직일 정도로.
영화감독으로써 낯선 판타지 영화를 만든다면 제주가 좋겠다고 생각했고, 신화적 판타지 영화를 구상중이다.
신화나 설화를 삶과 동떨어진 것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제주는 공간과 설화가 딱 붙어있는 느낌이다. 
설화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는 굉장히 영화적인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촬영은 아마 제주 곳곳에서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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