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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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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14  14: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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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다 그 안에 숨겨진 발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리도 발 못지않게 사랑스럽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당신의 머리까지 그 머리를 감싼 곱슬머리까지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저의 어디부터 시작했나요
삐딱하게 눌러쓴 모자였나요
약간 휘어진 새끼손가락이었나요
지금 당신은 저의 어디까지 사랑하나요
몇 번째 발가락에 이르렀나요
혹시 아직 제 가슴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닌가요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구두에서 머리카락까지 모두 사랑한다면
당신에 대한 저의 사랑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 아니냐고요
이제 끝난 게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처음엔 당신의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구두가 가는 곳과
손길이 닿는 곳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시작입니다.

-성미정의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일부

 

맞다. 사랑은 아주 하찮은 것에서 시작된다.
그가 든 낡은 가죽 가방이, 그녀의 깜빡이는 속눈썹이, 비뚤어진 넥타이, 거기에서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사소함이 자라나 기쁘고 설레고 그립고 아프게 그를 무너뜨리는 사랑이 된다.
시인은 어느 날 착한 구두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다 그 구두 안에 발을, 다리를, 머리를 급기야 전부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가 나의 어디만큼을 사랑하는지 못내 궁금하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시작인 사랑 앞에 오늘은 이처럼 착하고 아름다운 시 한편을 바친다.  오승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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