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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강도
김순진  |  webmaster@jeju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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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3.31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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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쯤 구멍가게를 할 때, 겨울의 일입니다. 가게에서 과일을 함께 파는지라 저는 날마다 새벽시장을 다녔지요. 저는 날마다 새벽시장을 다녀온 후 우리 가게 앞을 청소하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매일같이 골목길을 큰 빗자루로 쓸며 동네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은 저의 낙이기도 했습니다. 그날도 홍은동 청과물 시장에서 오토바이로 과일을 떼어다 정리하고 조반을 먹었습니다. 조반을 먹고 나면 일찍 일어나는지라 졸립게 마련입니다. 조반상을 물리고 TV를 틀어 놓고 감겨오는 눈으로 벽에 기대어 앉아 TV를 보며 졸고 있을 때입니다. 가게는 방과 붙어 있었고 아내는 방 옆에 있는 계산대 책상에 앉아 있었습니다. 가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방에 있을 때 손님이 오면 들리라고 문에 종을 달아놓았거든요.
“담배 한 갑 주세요.”
삼십대 초반쯤 남성의 목소리였습니다.

아내가 대답하였습니다.
“무슨 담배 드릴까요?”
그러자 갑자기 굵은 파열음이 들려왔습니다.
“돈 내놔!”
비몽사몽간에 있던 저는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방에서 가게 안이 잘 보이라고 매달아 놓은 자동차 백미러에 남자가 아내의 목에 칼을 들이댄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단 옆차기로 그의 얼굴을 가격하며 뛰어나갔습니다. 방이 가게보다 무릎만큼이나 높았고, 평소 조기축구로 단련되었기에 가능하였나 봅니다. 갑자기 저의 발차기로 얼굴을 맞은 강도는 칼을 떨어뜨리고 달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따라갔습니다. 눈이 녹은 골목은 미끄럽고 발도 시렸습니다. 저는 끝까지 따라가서 강도를 잡았습니다.
팔을 뒤로 꺾어 인근 파출소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강도가 갑자기 소리 내어 울며 말하였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아내가 얼마 전에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 분유 값이 없어서 그랬어요.”
그는 거의 통곡을 하며 사정하였습니다. 얼굴로 보나 행색으로 보니 진담으로 들렸습니다. 꺾었던 팔을 놓아주고 가게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방문을 닫고 소주 한잔을 권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그는 실직한 상태였고 변변한 기술 없이 힘든 상황으로 그의 말은 모두 진실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 듯한 사람인 듯하기도 했습니다.
“어쩐지 서툴다 했지요.”
나는 그에게 애써 웃으며 격려해 주었습니다.
“다 해도 강도질, 도둑질만은 안 됩니다. 아셨지요?”
저는 아내를 시켜 분유며 기저귀를 싸라 일렀습니다. 분유와 기저귀, 그리고 아침이라 매상이 그리 많지 않아서 만 원짜리 석장을 주며 그를 보냈습니다. 그 후 그는 인력사무소를 통해 건설현장에 나간다며 쉬는 날이면, 가끔 분유를 사러 먼 곳에서 버스를 타고 일부러 우리 가게에 왔습니다. 요즘은 저도 구멍가게를 하지 않고 그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여유로워져서 그의 아이들이 걱정 없이 자라났기를 바라는 마음 뿐입니다.<김순진/수필가.스토리문학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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