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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사태를 바라보며...
신진우  |  webmaster@jeju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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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4.07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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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8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은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의 조계사의 봉은사 직영사찰을 둘러싼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현정치권 실세들 사이에 오간 말들을 미주알고주알 까발린데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러자 명진 측은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 “자승은 봉은사에 와서 참회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이야말로 점입가경이다.
강남 금사라기 땅 한가운데 위치한 봉은사, 면적 2만1천90여 평, 공시지가 1천7백2십억, 현 시세 기준 약 2조원으로 추정되는 요지중의 요지이다. 신도 수 약 25만명, 연수입이 약 120억이다. 봉은사는 년간 12억의 분담금을 내고 있었다. 봉은사는 2006년 현주지인 명진 스님이 부임한 이래 급격한 성장세를 일으켰다. 명진 스님은 북한의 선군정치(先軍政治)를 미화한 월간지 ‘민족21’의 발행인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뿐만 아니라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에서도 활동했으며, 민추본(민족공동체추진운동본부)의 집행위원장까지 맡은 걸로 알려져 있다. 광우병파동 때에도 예의 목소리를 내었고, 천일기도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도 참석해 명 조사를 낭독해 그 자리에 참석한 숱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천일기도가 끝나자 용산참사 현장을 찾았고, 유가족을 붙들고 슬픔의 눈물을 흘리며 조의금으로 1억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그는 현 정권을 비판하는 갖가지 멘트를 끊임없이 내놓았다.
헌데 어느 날 갑자기 거칠 것 없던 그의 탄탄대로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조계종에서 봉은사를 직영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사찰중 규모가 크거나 기부금이 많은 곳은 직영사찰로 지정하고 특별 분담금을 더 내도록 하는 관례에 따른 것이다. 중앙종회의원 49명이 찬성하고 21명이 반대한 무기명투표로 결의되었다. 그 이면에는 지난 십년동안 절치부심하던 현 여권(한나라당)이 벼르고 있다 그를 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자 명진 스님은 극렬하게 저항했다. 정치탄압으로 규명하며 온몸을 바쳐 맞설 것이라 천명했다. 그때도 그는 눈물을 흘렸다. 승려다보니 다행히 삭발식은 따로 거행하지 않았다. 불교계내막폭로는 이렇게 해서 터져 나왔다.

한국의 불교계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은, 다른 종교는 아무리 험악한 집안싸움을 하더라도 자신들의 치부는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는 반면, 불교계는 늘 스스로 노출시켜왔다. 그래서 검. 경은 불교계에 관한한 따로 정보를 수집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불타 석가모니는 비록 소국(小國)이었지만 한나라의 왕좌(王座)를 버리셨다. 그리고 소국의 왕좌를 버린 대신에 천하를 얻었고,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영혼의 스승으로 만인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엔 우리시대의 등불이던 법정스님이 입적하셨다. 평생 무소유의 삶을 살아오신 스님은 떠나는 순간까지 행여 자신으로 인해 폐를 끼치는 것이 싫어 관(棺)도 수의도 마다하셨고, 심지어 사리도 찾지 말라 하셨다. 입은 옷 그대로 불길 속에 들어 한줌의 재가 되었지만 그는 우리들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셨다. 법정스님은 한 번도 사찰 주지를 맡으신 적이 없다. 성북동 대원각을 길상사로 탈바꿈 시킬 때 창건하느라 잠시 회주를 맡았을 뿐이다. 이렇게 그릇 차이가 나던가?
문득 종교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종교는 사후세계(死後世界)를 만들어 내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인간은 누구나 사후세계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 종교가 두려운 이유는 죄와 심판과 벌이 있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종교에 복종하거나 적어도 친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종교는 2,50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신(神)의 이름을 이용하여 인간위에 군림해왔다. 그 신(神-사후세계의 지배자)과 인간의 중간에 놓인 자가 성직자들이다. 그들은 우리들처럼 생업에 매달릴 필요 없이 그저 사후세계만 잘 설명하고 관리해주면 먹고 사는 일은 걱정이 없었다. 게다가 돈과 여자들이 절로 굴러 들어왔다. 그러니 감투를 놓고 다투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 좋은 자리에 있으면 더 많은 돈이 들어오고 더 예쁜 여자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세속에 머물며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아둥바둥 대는 사람들을 비웃기까지 한다. 동남아의 소승불교 성직자들은 여자들과의 접촉 자체를 금기로 여긴다. 즉 1미터 이내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거기에 비하면 한국의 성직자들은 너무나 인간적이다.<신진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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