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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뿌리며
양금희  |  webmaster@jeju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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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4.14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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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속의 비밀이 풀리고 있다. 겨우내 묻어두었던 씨앗들이 발아를 통해 묻혀 있던 알뿌리들이 뾰족뾰족 새싹을 통하여 빈 가지에 내미는 여린 연두 빛 새순을 통해 비밀이 새고 있다. 겨우내 굳었던 땅은 이제 봄을 향하여 언 맘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 화해와 용서의 미덕이 발휘되는 순간 또한 굳어진 흙 속에 묻혀 있던 꽁꽁 언 마음이 새순을 내미는 봄의 문턱처럼 부드러워진 순간일 것이다.
주변을 둘러 보면 빈 땅이란 없다. 아스콘이나 시멘트 포장이 되지 않는 땅 위에는 작은 풀 하나라도 자라고 있다. 경계를 그어 놓고 안전거리를 유지하려고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 삶의 많은 부분을 허비하고 있는데 자연은 아랑곳없이 계절의 변화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날씨가 따뜻해져 거름을 만들기 위해 쌓아두었던 각종 풀이며 음식물 찌꺼기가 발효가 잘 되어 부드러운 흙으로 변한 것을 화단에 뿌려줄 요량으로 작업에 들어갔다.

자연은 겨울 동안에도 오물을 부드러운 흙으로 정화시키는 작업을 해두었다. 풀이며 찌꺼기를 잘 발효시켜 흙으로 변화시키는 자연의 놀라운 기술은 잘린 고구마 줄기에서 고구마를 만들어 내고 작은 씨앗에서 커다란 나무를 뿌리 내리게 하고 각종 열매를 고유의 특성에 맞게 키워내고 식물의 생명을 연장시키거나 죽은 나무나 식물에서 또 다른 생명을 키워낸다.
봄비가 잠시 멈춘 틈을 타서 상추와 과꽃 씨앗을 뿌리기로 했다.
씨앗을 뿌리려고 빈 땅을 찾아보니 빈 땅이 거의 없다. 상추 씨앗은 그런 데로 뿌렸는데 과꽃 뿌릴 공간이 없다. 어쩌면 욕심이 늘고 있는지 모른다. 이제는 그만 심어야지 하면서도 꽃을 보면 결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꽃을 심기 위해 호미를 들고 화단에 서 있다. 억지로 척박한 곳 몇 군데와 상추 씨를 뿌린 곳 가까이에 과꽃 씨앗을 뿌렸다. 지난 비에도 꽃을 심느라 마당의 잔디 일부분을 걷어내어 꽃을 옮겨 심었는데 자꾸만 심을 것들은 많아지고 땅은 좁아지고 있다. 겨우내 빈 땅으로만 보였던 곳에서 새싹들이 얼굴을 내밀며 영역 표시를 한다. 꽃과 나무를 심는데도 약간의 법칙이 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간격이 없으면 안 되듯 꽃을 심을 때도 최소한의 간격을 두어야만 꽃의 성장에 어려움이 없고 햇빛을 제대로 받아 꽃을 피울 수 있다. 손질 잘 된 정원을 보았다면 부지런한 주인의 노력을 같이 보아야 할 것이다. 무늬 비비추, 개족두리, 화살나무, 둥굴레, 쥐똥나무, 윤판나물, 더덕이 연한 싹을 봄의 전령사처럼 세상을 향해 내보내고 있다. 소나무에도 새순이 올라와 있고 철쭉에는 봉오리가 맺혀 있다. 모과나무에는 연분홍 꽃이 보인다. 자두나무도 꽃이 피었다. 그러나 열매가 달리는 나무에는 아픔이 숨어 있다. 벌써 심은 지 오래된 나무인데 감나무, 대추나무를 제외하고 열매를 수확해 본 적이 없다. 열매만 수확해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매실나무는 아예 꽃조차 피워보지 못했다. 그것은 가지치기를 함부로 해버린 결과다. 그저 보기 싫은 것을 잘라낸다고 나무를 시도 때도 없이 자르다 보니 나무가 충격을 받았는지 꽃조차 피우지 않고 있다. 배나무는 접목시킨 부분 중 열매를 맺을 가지를 키워야 하는데 그대로 무성하게 자라도록 내버렸다가 작은 가지 한쪽은 그나마 꽃이 피는데 아주 무성한 큰 가지는 몇 년 째 꽃이 피지 않아 이웃에 조언을 구했더니 자르라고 한다. 작년에 자를까 하다가 한 해 기회를 주자고 한 것인데 결국 배나무는 큰 가지를 잘라버렸다. 그냥 두는 것도 고려 해보았으나 매년 잎에 이상한 병이 생겨 여름 동안 잎이 계속 떨어지고 이상한 벌레처럼 까맣게 변해서 여름내 낙엽을 주어야 했다.
오히려 큰 가지를 자르고 나니 비로소 기운이 났는지 작은 가지가 꽃도 많이 피우고 안정감도 든다. 열매를 보는 일이 쉽지 않은 일임을 나무를 키우면서 깨달았다. 오히려 열매를 보기 위해 몇 년간 나무를 손질하고 키우는 것보다 사서 먹는 일이 훨씬 경제적이며 편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나마 과실나무 중 대추나무와 감나무는 지극히 성공한 경우다. 단감나무는 첫해는 떫은맛이 조금 나더니 익고 나서는 너무 달아서 못 먹겠다고 할 정도로 단맛이 짙은 감을 우리에게 기쁨의 선물로 안겨 주었다. 새들도 종종 날아들어 시식해도 가을이 깊어가는 동안 감나무에는 익은 감들이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이웃에 나눠 줄 여유도 누린다. 대추나무도 많이 열리지는 않았지만 꿀이 들어 있다고 여길 정도로 단맛이 짙은 굵은 대추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었다. 아마 이래서 사람들은 울안에 과일 나무를 심는지 모른다. 열매를 수확하는 기쁨을 느끼고자 나무를 다듬고 거름을 주고 가지치기를 하면서 정성을 다하는 것이리라.
이 비에 오늘 뿌린 씨앗들이 생명의 젖줄을 맘껏 잡아당기며 성장을 재촉할 것이다. 더불어 씨앗을 뿌린 오늘의 수고가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는 기쁨이 되기를 바란다. 햇살 같은 아름다운 사람들 봄비도 되고 햇빛도 되고 새소리도 되며 푸른 상추를, 보랏빛 과꽃을 같이 키워 줄 것도 같다.<양금희.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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