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문=전아람 기자]

지난해 2월 21년만에 전면개정된 제주4·3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도내 각계 인사들이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제주특별자치도

▲ 배보상 현실화, 2021년 제주4·3특별법 개정

 제주4·3의 해결방향은 크게 3가지다.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사실로 드러난 과거사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할 것, 오랜기간 신분적 불이익을 받아오거나 진실에 가린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킬 것, 그리고 책임자로부터 정당한 피해 보상을 받게 할 것.

 2021년 위 세가지 목표 가운데 국가 배보상 책임을 중점으로 한 제주4·3특별법이 두번 개정됐다. 희생자 배보상 근거를 법률에 명시하고, 국가책임에 따른 배상은 물론 국가책임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더라도 희생된 이들에게 피해를 보상하는 방안으로 ‘보상금’이 지급되는 내용이 핵심이다.

 과거사 해결의 모델이 되는 기본 방향으로서 제주4·3특별법이 작동되게 설정돼, 4·3의 역사적 상흔을 딛고 화해와 상생의 모델로 거듭나는 ‘완전한 해결’에 전기를 맞았다는 평가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당장 2022년도 정부예산에는 희생자 보상금 지급을 위한 1810억원도 반영됐고, 앞으로 5년동안 순차적으로 보상절차가 진행된다.

 추가 진상조사가 이뤄지고, 명예회복을 위한 직권재심이 이뤄진다. 또한 사망 또는 행방불명된 희생자에게는 ·최대 9천만원의 ‘보상금’이 지급되며, 그외 희생자에게는 피해나 희생 양상에 따라 차등적인 보상금이 지급된다. 보상청구권을 상속받는 이들의 범위와 상속개시 시점을 민법과 달리 정하는 특례도 마련됐다.

 하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과정에서 손쉽게 개정될 것이라 생각한 가족관계·혼인관련 특례는 “신중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법원행정처의 지적으로 삭제된 채 진행돼야만 했다. 배보상의 주요 큰 틀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개정법률안에서 삭제된 특례부분은 입법화되지 못해 보상청구권을 갖기 어려운 사례들이 적지 않아 아쉽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 국가폭력으로 ‘뒤틀린’ 가족관계

 지난 12월 22일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제주4·3과 관련한 호적불일치 실태조사 보고회가 열렸다.

 조사연구자에 따르면 70여건의 불일치 사례를 조사해보니 희생자와 가족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정보의 관리가 불안정했던 시대적 상황, 제주4·3사건에 대한 사회적 편견, 보수적이고 부계위주 가족관계 형성권한 행사로 실질 가족관계가 호적관계에 반영되지 않은 사례들이 많았다고 분석됐다.

 무엇보다 이들이 나중에 희생자와 가족관계를 인정받으려고 소송등의 절차에 나섰지만 유전자 대조검사등 현대적 관점으로만 요구되는 증명방법으로는 한계에 부딪혀 수없이 좌절되고 말았다.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은 4·3위원회 결정으로 가능하다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희생자 사망일자나 장소의 정정 정도만 가능할 뿐이며, 실제 정정한 사례도 전무한 상황이다.

 유족단체는 이같은 문제를 지속 제기해왔지만 지난해 법률개정 과정서도 다시 한번 등한시 됐다면서 이를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혼란했던 시대의 불가항력은 물론 제주4·3사건의 진행과정에서 자행된 불법적인 국가폭력과 사회적 낙인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입장이다. 희생자와 유족들은 뒤틀린 가족관계를 바로 잡아야 할 책임 역시 국가에게 있다고 본다.

 모든 뒤틀린 가족관계를 당사자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는지도 논란이 있다. 정확한 실체를 규명한다는 의의는 있지만 세대를 거듭하며 후손들이 형성해 온 가족관계와 재산상속등 현재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고자 하는 유족들의 의사도 존중돼야 한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지난 12월, 제주4·3관련 호적불일치 실태조사 보고회에서 특별법 개정안에 포함되지 못한 가족관계 특례에 관한 대안이 심도있게 논의됐다. 사진. 제주신문

▲ 2022년 새로운 과제

 호적 불일치 사례의 당사자들은 22년만의 4·3특별법 개정에 따른 보상에 대한 기대를 가지기도 어렵다고 호소한다. 이들이 배보상 대상자에서 제외돼 느끼게 될 박탈감이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어렵게 하는 부분으로도 지적된다.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된 피해에 아무런 구제방법이 없어 보상에서 제외된 상황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족단체에서는 4·3당시 출생한 희생자의 호적 창설, 행방불명으로 DNA 대조가 어려운 경우 증언에 의한 친자관계 인정, 행불 희생자가 호적상 살아있는 상태서 이뤄진 혼인신고와 출생신고 인정, 사실 관계에 따른 사망신고시 사망날짜 이후 혼인 및 출생에 대한 특례조항 반영을 요구한다. 이같은 특례조치가 없는한 사망자를 배우자로한 혼인신고는 무효이고, 그를 부모로 한 출생신고도 무효다.

 유족들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도록 행정안전부는 올해 예산을 마련해 “가족관계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의 연구용역을 진행할 계획이다. 연구용역까지 진행되면 개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와 사법부의 보다 전향적인 해결의지가 없다면 당초 추진하려던 유연한 특례조항의 제도화는 법적 가족관계에 대한 보수적인 법원의 태도와 법적 안정성을 이유로 쉽지 않다는게 법률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렇더라도 의지를 굽힐게 아니라 뒤틀린 가족관계를 바로잡는 방안을 4·3 해결의 중점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4·3위원회와 전문성이 확보된 분과의원회 활용한 가족관계 정정 수단 확보, 현 시대 수준의 가족관계 입증책임 완화, 새롭게 형성된 가족관계를 유지하려는 의사를 존중한 선택권 부여등 다양한 입법 제언이 쏟아지고 있다.

 2022년 제주4·3특별법이 가족관계 특례를 마련함으로써 또다른 선행적 입법 사례가 될 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